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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등록일 2016-09-02 02:01 게재일 2016-09-0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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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영 수필가
사진은 찍는 순간 과거의 시간이다. 사진의 기록성은 사진이 가진 힘이다. 카메라가 발명되고 사진을 미술로부터 독립하여 발전시킨 사진가들도 사실성과 기록의 힘에 주목했다. 사진을 찍으며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본다. 산책만 하여도 여행을 떠나온 듯하다. 풍경들을 사진에 담는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사진으로 바라보는 일출의 순간은 언제보아도 늘 감동으로 다가온다. 시시각각 명도와 채도를 바꾸며 꿈틀거리는 먹빛은 마치 거대한 공룡이 잠에서 깨어나는 듯하다. 심해 어디쯤에서 밤새 참았던 호흡을 일시에 내뿜으며 치솟는 태양을 바라보는 일은 황홀경 그 자체다. 수많은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점 하나를 포착해내는 게 사진이다. 사진은 그 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게 한다. 사진을 보면서 순간의 기록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시간여행을 한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공유하고 기록된 시간을 소유한다.

기록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고대나 현대나 다르지 않다. 고대인들은 주로 동굴이나 바위에 그림을 그려 기록으로 남겼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겪으며 형성된 시간의 퇴적을 만나기에 좋은 곳이 고분벽화나 암각화이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즐기고 싶은 날은 유적지를 찾는다.

영일칠포리암각화에 가면 선사시대에서 산책을 즐기는 듯하다. 암각화란 바위나 동굴 벽에 동물그림이나 기호 같은 문양이 새겨진 것이다. 지나온 시간을 만나는 것은 살아있는 신화를 만나는 일이다. 이정표를 따라 좁게 난 산길을 올라가면 `암각화 가는 길`이라는 작은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칠포리 암각화는 `흥해읍 칠포해수욕장 서쪽의 곤륜산 계곡 옆에 놓여있는` 바위 면에 새겨져 있다. 모두 세 군데 있다고 하는데 쉽게 볼 수 있는 바위는 오솔길 옆에 있는 서북향 사암(砂巖)바위다. 길이 3m, 높이 2m 크기로 새겨진 그림이 실패처럼 보인다. 선각(線刻)으로 새겨진 무늬를 자세히 살펴보면 칼 손잡이처럼 생겼다. 새겨진 문양은 석검의 날이 분리되어있는 모양이다.

그림들 밑으로 희미한 선의 흔적이 보인다. 먼저 새긴 그림들이 풍화작용으로 마모되면 그 위에 다시 마찰을 가해서 새긴 흔적처럼 보인다. 제사의식 때마다 바위에 마찰을 가한 교접 주술적의미로 추측해 본다. 신성하게 여기는 바위에 마찰을 가함으로써 그 자체가 성행위적 주술이 아니었을까? 암각화의 그림은 농경시대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주술행위의 결과물인 것 같다.

영일칠포리암각화는 청동기시대 바위위에 새겨진 그림이다. 주술행위로 추측되는 선들은 풍년과 다산의 의미를 담은 선조들의 기원이었다. 농경의례에서의 간절한 소망이 선과 선 사이로 느껴진다. 암각화에 대해 정확히 전해지는 문헌기록은 없으나 새겨진 그림을 토대로 청동기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암각화를 사진에 담는다. 청동기시대의 시간이 새겨진다. 불어오는 바람에도 신성함이 느껴진다. 암각화의 새겨진 무늬를 바라보며 시공간을 넘어 선조들의 삶과 조우해본다.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프레임에 담으며 시간여행을 즐긴다. 그곳에 미래의 시간이 함께 공존한다.

오후 빛에 내 그림자의 무늬가 길다. 낮과 밤의 경계에서 나는 천천히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시간의 경계를 넘어 또 다른 시간을 찾아 여행을 나선다. 시간여행이 즐거운 것은 현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시간은 하나의 점이다. 시간여행은 일상적인 내 삶에 추억을 하나 보태는 것이 아니라 삶에 질문을 던지게 한다. 시간여행의 정거장은 현재다. 현재는 미래의 과거이다. 시간은 영원히 흐르고 흐른다. 하지만 삶은 영원하지 않기에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서녘에는 어느덧 해가 진다. 오후 햇살을 등에 진 내 그림자, 암각화 무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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