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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희극계의 대부` 구봉서 영면

연합뉴스 기자
등록일 2016-08-29 02:01 게재일 2016-08-2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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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고단한 서민들 삶 위로
코미디언 구봉서는 우리나라 희극계의 대부이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 연예계의 거목이었다.

그는 배삼룡, 곽규석 등과 콤비를 이뤄 1960~80년대 한국 희극계를 주름잡으며 코미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정치적으로 암울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 웃음으로 고단한 서민들의 삶을 위로했다.

그는 1926년 의료상을 하는 평양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5년 대동상고를 졸업한 뒤 태평양악극단 악사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평소 취미로 즐기던 아코디언을 들고 길거리를 지나던 중 급히 악사를 구하던 태평양악극단에 의해 길거리 캐스팅 됐다.

그는 1940~60년대 연극, 만담, 코미디, 노래가 어우러지는 악극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양석천, 양훈, 김희갑, 서영춘, 배삼룡 등과 함께 전국을 돌며 서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충무로에 진출해 코믹영화의 전성기를 열었다.

`애정파도`를 시작으로 `수학여행`,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가도`, `번지수가 틀렸네요`, `염통에 털난 사나이`, `오부자`,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 4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출세작이 된 `오부자`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막둥이로 나온 구봉서는 `막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1969년 MBC TV 개국과 함께 탄생한 장수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비실이` 배삼룡과 명콤비로 연기를 선보이면서 국민적인 스타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한번은 `웃으면 복이 와요`의 콩트에서 극중 아들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는 뜻으로 글자수가 72자나 되는 긴 이름을 붙여줬는데, 지금도 회자되는 희대의 유행어가 됐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드셀라 구름위 허리케인에 담벼락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동양방송(TBC) TV 프로그램 `쇼쇼쇼`에서는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콤비를 이뤄새로운 코미디를 선보였는데, 이를 계기로 라면 TV 광고에 등장해 `형님 먼저, 아우먼저`라는 카피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찰리 채플린의 희극 연기를 신봉했던 구봉서는 “코미디는 풍자”라고 믿었다.

매를 맞더라도 잘못된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진실이 담긴 코미디를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은퇴 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요즘은 풍자 코미디가 부족하다”며 “코미디가 사회를 정화하는 역할을 못 한다면 의미와 역할이 퇴색될 것”이라고 했다.

많은 유행어를 낳았던 구봉서는 이에 대한 생각도 남달랐다.

몇년 전 한 TV 방송에서 그는 “억압의 시대에 사람들의 억눌린 마음을 대변했기때문에 유행어가 됐다”고 했다.

그는 60년 이상 희극인으로 살면서 사회와 연예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구봉서는 은퇴 후 종교 생활에 전념해왔다. 인기가 정점에 있던 1970년대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으며 연예인 선교에 힘쓰며 서울 평창동의 연예인교회(현 예능교회) 설립을 주도했다.

그는 향년 90세의 일기로 27일 생을 마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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