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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대의 꽃이 피는 밤

등록일 2016-08-12 02:01 게재일 2016-08-1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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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영수필가
황홀한 밤이다. 화려하게 불꽃들이 수를 놓는 듯하다. 바다에서 솟아오른 불의 씨앗들이 캄캄한 밤하늘에 흩뿌려진다. 하늘로 올라간 씨앗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낙화를 바라보는 것 같다.

모래사장 위에서 불꽃을 바라보았다. `포항국제불빛축제`는 불과 빛의 도시 포항을 대표하는 여름축제이다. 올해도 영일대해수욕장과 형산강체육공원에서 축제가 열렸다. 축제기간 중 영일대해수욕장에서 펼쳐진 불꽃 축제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10여만 발의 폭죽들이 쏘아 올려졌다. 밤바다를 배경으로 불꽃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그 광경을 바라보노라면 폭죽이 터진다는 말보다 밤하늘에 꽃이 핀다고 해야 할 것만 같다. 불꽃들은 꽃잎처럼 밤하늘에 나부낀다. 모래톱 위에서 음악과 함께 쏟아져 내리는 불꽃의 낙화를 보고 있으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불빛축제가 열리는 영일대해수욕장은 한 여름 밤의 새로운 휴양지가 되었다. 해마다 축제를 보러오는 관람객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어머니와 함께 관람하기로 했다. 아흔의 어머니가 인파들 사이에서 축제를 즐기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 걱정이었지만 많이 걷지 않아도 되는 곳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밤바다 야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불꽃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순간 내 곁에 서 계시던 어머니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으며 바라보신다. 펑펑 터지는 소리에 놀라셨나보다.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시는 듯하여 돌아가려하자 어머니는 “곱다 참 곱다” 하시며 밤하늘을 바라보고 계셨다. 직접 본 것은 처음이라며 집에 돌아와서도 연신 불꽃이야기를 하셨다. 무서움을 느꼈냐는 내 질문에 “처음에는 난리통처럼 난리가 난 줄 알았다”하며 빙그레 웃으셨다.

어머니는 전쟁을 겪은 세대이다. 폭죽소리, 함성소리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일까? 경험에 의한 두려움이 무의식으로 나타났나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불꽃놀이를 함께 본 후로 아이들은 큰소리만 들리면 불꽃을 보러 가자고 했다. 어린아이들에게 큰소리에 대한 경험은 불꽃놀이로 연상이 되었던 것이다. 경험은 참으로 중요하다. 경험에 의해서 생겨난 인식이 오랫동안 무의식에 남아서 긍정과 부정의 생각으로 나타나게 된다. 부정적 무의식은 새로운 좋은 경험으로 긍정적 무의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부정적 무의식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기에 삶은 풍요로울 수 있다. 어머니에게 오늘 밤의 경험은 두려움보다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축제기간에 찍은 사진들의 색감은 붉고, 푸르고 화려한 꽃처럼 보인다. 한 장의 사진에 `영일대의 꽃이 피는 밤`이라고 제목을 붙어본다. 노란 불꽃들이 꽃처럼 활짝 피어 있다. 밤바다의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과 불꽃들이 어우러져 그림을 그려놓은 듯하다.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고흐의 그림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 떠오른다. 파리를 떠나 아를에 도착한 고흐가 론강의 밤풍경에 매료되어서 그린 그림. 고흐의 여러 작품 중에서 좋아하는 그림이다. 푸른 밤의 풍경, 강가를 거니는 연인들, 황금색의 별빛과 강물에 비친 불빛의 그림자. 황홀한 노란빛이 꿈과 희망을 주는 것 같아 이 그림을 특별히 좋아한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흘러내린다. 폭염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긴다. 요즘은 전국적으로 다양한 축제들이 열리고 있다. 계절별 지역별로 주제도 다양하다. 매일 축제가 열린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축제의 성격과 의미도 변화되었다.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여가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더위 속에서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며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행복한 경험은 삶의 또 다른 에너지가 된다. 영일대 밤바다의 불꽃놀이를 바라본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한여름 밤의 아름다운 기억은 뜨겁고 화려한 삶의 꽃으로 피어나지 않을까? 어둠속에 솟아오른 폭죽들이 화려한 꽃으로 핀다. 허공에 핀 불꽃들은 별빛처럼 반짝인다. 불의 씨앗들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듯 어머니 마음에 행복한 기억의 꽃이 피어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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