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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짱 도루묵은 없다

등록일 2016-07-15 02:01 게재일 2016-07-1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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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진숙 수필가
어느 해 `여름문학캠프`에 참가했을 때였습니다. 유독 내 입맛을 끄는 반찬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도루묵조림이었습니다. 손가락 두어 개 정도의 크기라 한두 입에 쏙 들어가고, 부드러운 살이라 씹어 삼키기 좋으며, 삼삼한 간에 구수한 맛이 감돌았으니까요.

캠프에서 돌아온 이튿날이었습니다. 저녁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가서 생선가게 앞을 지나는데 불현듯 도루묵 맛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맛을 내 손으로 살려내고 싶어 도루묵 한 무더기를 샀습니다.

냄비에 담은 도루묵에다 갖은 양념을 넣고 잠길락 말락 물을 부었습니다. 그러고는 국물이 졸아들게 하느라고 가스 불을 조금 강하게 켜 놓았어요. 졸아드는 짬을 이용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방에 들어가 펼쳐진 신문을 보았어요.

기사 하나를 다 읽고 거실에 나오려고 방문을 여는 순간 탄내가 훅 코에 끼쳐왔습니다. 재빨리 가 냄비 뚜껑을 열어보니 도루묵이 새까만 먹옷으로 갈아입었지 뭡니까.

가스 불을 급히 끄고 막 뒤처리를 하려는 참인데 퇴근한 남편이 들어왔습니다. 들어오자마자 코를 막은 채 문이란 문은 모조리 열어젖히고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팔았기에 이 냄새가 나도록 음식을 태우나”며 핀잔을 하였습니다. 핀잔은 좀체 그치지 않았습니다. 콩이야 팥이야 잔소리를 늘어놓았어요.`그만 좀 하세요.`라는 말이 목구멍에까지 치밀었지만 백번 내 잘못한 일이니 참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어요.

근사한 맛을 흉내 내 가족의 입맛을 돋우려던 내 계획은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았습니다.

본래 도루묵은 우리나라 근해에 살고 있는 물고기입니다. 임진왜란 때 몽진(蒙塵) 길에서 무척 시장하던 임금님이 한 어부가 바친 `묵`을 먹어보고 너무 맛이 좋아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답니다. 그런데 난이 끝나 궁궐로 돌아온 임금님이 문득 그 은어가 생각나서 가져오라 하여 먹어 보니 몽진 길에서 먹은 그 감칠맛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도로 묵이라 불러라” 명했답니다. 한껏 올랐던 묵의 위상이 도루묵으로 순식간 곤두박질쳐버린 겁니다.

오기가 뻗친 나는 이튿날 다시 도루묵을 샀습니다. 전날의 실패에 대한 설욕전을 펼 요량으로 양을 배로 늘렸습니다. `망할, 물이 적어서 그랬던 거야!` 도루묵이 잠기도록 넉넉하게 물을 부었습니다. 불도 중불로 낮췄어요.

도루묵이 익을 동안 딴 짓을 하지 않으려고 냄비 앞을 얼쩡거리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문학에 풍부한 지식을 갖춘 지인이었습니다. 한동안 전화 두절이더니 한가한 모양인지 문학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도루묵조림에 신경이 쓰여 건성으로 장단 맞추던 것이 다양한 문학 소식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지인의 입담에 흠뻑 빠지고 말았답니다. 경청하면서 맞장구도 치고, 질문도 하고, 웃기도 하고, 감탄도 하며 문학 저변에 대한 잡담에 정신을 팔다가 깜짝 놀라 냄비를 돌아보니 제법 센 김이 뿜어지고 있었습니다.

황급히 전화를 끊고 냄비에게 달려갔지요. 얼른 뚜껑을 열고 보니 이게 또 웬 변고랍니까. 자작하니 익어 있어야 할 도루묵이 푹 삶아져 흥건한 국물 속에 잠겨 있으니 말입니다.

전날은 물이 모자라 말썽이던 것이 다음날은 넘쳐서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모자라거나 넘치면 말짱 헛일이 된다는 걸 도루묵이 몸소 확인해 보인거지요.

`묵`이었다가 `은어`가 되고 도로 `묵`이 된 것은 결코 물고기의 탓이 아닙니다. 도루묵은 수심 100~400m의 바다에서 자유를 꿈꾸는 선량한 물고기일 따름입니다. 순하디 순한 물고기일 뿐이랍니다. 말짱 도루묵은 없습니다. 굳이 도루묵이 있다면 사람들이 붙인 새로운 이름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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