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오래 살다 보면 사람의 오관(五官)이 자연의 변화에 민감해진다. 초여름의 한낮은 뭔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섭씨 30도를 육박하는 더위와 숨가쁘게 부풀어 오른 녹음방초들로 산과 들의 한껏 고조된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질 즈음, 터질 듯 한 긴장감과 조바심을 깨뜨리며 드디어 뻐꾸기가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뻐꾹 뻐꾹 뻑뻐꾹 뻑꾹….
동양화의 여백이 그림 속의 풍경을 더욱 그윽하고 운치 있게 하듯, 뻐꾸기 소리는 녹음 우거진 유월의 풍경을 한결 고즈넉하고 시정(詩情)이 넘치게 한다. 태양의 열기와 녹음의 울창함에는 반드시 뻐꾸기 소리를 더해야만 하나의 완성된 여름 풍경이 되는 것이다. 마치 조명과 배경이 아무리 좋아도 음향효과가 빠져서는 완전한 영상물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뻐꾸기 소리는 수컷이 짝을 부르는, 그러니까 연가(戀歌)인 셈이다. 대개의 조류들처럼 뻐꾸기도 수컷이 노래를 불러 암컷들을 유혹한다.
암컷들은 고작 `뿟, 삣, 삐이` 정도의 소리를 내는 것이어서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뻐꾸기 소리는 모두 수놈들의 소리인 것이다.
녹음 우거진 여름 한낮을 짝을 찾는 수컷들의 애절한 노래 소리가 이 산 저 산을 메아리 칠 때, 암컷들은 숨을 죽이고 그 연가들에 담긴 사랑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리라. 그리고는 마음을 끌고 영혼을 뒤흔드는 노래 소리의 임자를 찾아가 아름다운 사랑을 완성하리라.
여기까지는 얼마나 낭만 적인가! 짝을 찾고 선택하는 기준이 오로지 한 소절의 연가뿐이라고 할 때, 그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일 것인가. 인간 세상에도 그 제도(?)를 도입해서, 남자는 결혼 적령기가 될 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기울여 한 편의 시를 짓고 여자는 또 시를 보는 안목을 길러서, 그 한 편의 시에 담긴 사랑과 진실과 아름다움을 배우자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아마도 살다가 등 돌리고 갈라서는 일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뻐꾸기가 스스로 둥지를 짓지 않고 다른 새들의 둥지에다 탁란(托卵)을 해서 새끼를 키운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뻐꾸기 새끼의 유모로 선택되는 불행한 새들은 주로 개개비, 때까치, 멧새, 할미새, 종달새 등인데, 그들이 둥지를 틀고 산란할 때를 엿보고 있다가 주인이 둥지를 비운 사이에 그 알 중에 하나를 먹어버리고 제 알을 대신 낳아 놓는다.
그런 줄도 모르는 가짜 어미 새는 열심히 알을 품는데, 제일 먼저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나머지 알들마저 둥지 밖으로 밀어내어 떨어뜨려 버리고 가짜 어미가 물어오는 먹이를 독식하면서 무럭무럭 잘 자란다는 것이다.
무려 3, 4 주 동안이나 자기보다 몇 배나 덩치가 커지도록 남의 새끼를 위해 허겁지겁 먹이를 물어다 나르는 유모의 정성과 수고를 정작 어미 뻐꾸기는 모른체하고 있다니 세상에 이런 파렴치가 있는가.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지만, 일찍이 노자(子)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던가. 그것에도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하는 섭리가 있는 거라고 믿을 수밖에….
딸의 소리에 한이 서리게 하려고 일부러 눈을 멀게 했다는 소리꾼의 얘기가 있듯이, 탁란의 숙명이 뻐꾸기소리를 더 애절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뻐꾸기의 구애 이벤트에 산천초목이 다 가담을 했으니 모두가 공범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