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내년 대선 후보 문제가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이 나라의 총선, 대선, 지방선거 등 연이은 선거 구도가 정치의 과잉을 부추기고 있다. 그동안 야권에서는 여러 명의 대선 후보가 등판했는데 여당에서는 뚜렷한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대선 후보로 거론되었던 오세훈, 김문수 후보가 총선에서 패하고, 김무성 후보가 총선 패배의 책임문제로 직격탄을 맞은 결과이다. 이러한 정황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제주 발언은 사실상 출마 선언이라고 수용하는 분위기이다. 언론에서는 대체로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당의 친박에서는 그의 출마를 환영하면서 내년 대선에서 그가 반드시 승리할 것으로 예단하는 인사도 있다. 그러나 비박에서는 대체로 침묵중이지만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 중에는 내부적으로는 마음이 매우 편치 않을 것이다. 여당은 총선 후 지난 달포 간 총선 패배의 책임문제로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그러나 이번 반 총장의 대선 관련 입장 표명은 후보 빈곤으로 절망감에 빠진 여당에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로 인해 반 총장의 제주에서의 발언은 내분에 휩싸인 분열된 여당을 안정시키고 결속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반 사무총장이 대선후보로 끝까지 완주할 것인가. 아니면 관료 출신 고건 전 총리처럼 중도 포기할 것인가. 그가 대선 가도에서 성공 할 것인가 아니면 일부의 주장처럼 일종의 신드롬으로 끝나고 말 것인가. 아직도 1년 반이나 남은 대선 가도에는 돌발 변수가 너무 많아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힘들다. 반 사무총장이 대통령 후보가 되어 성공하려면 넘어야 할 준령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사실 그의 성공여부는 그의 앞에 가로 놓인 크고 작은 준령을 어떻게 무난히 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먼저 반 사무총장은 여권 내의 후보 경선에서 통과하여야 한다. 당내에서 친박에서는 그의 합의 추대를 주장하겠지만 그 자체가 사실은 가장 큰 일차 관문이다. 비박의 김무성. 오세훈 등이 경선을 포기하고 합의추대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친박에서 반 총장을 후보로 합의 추대하자고 할 경우 비박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당내 후보 경선에서 친박과 비박의 갈등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그렇다고 레임 덕에 걸린 대통령의 `위로부터의 점지`는 당내에서 역풍을 맞아 그의 입지를 어렵게 할 것이다.
설령 이 과정을 거쳐 그가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다고 하더라도 본선 경쟁에도 수많은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이때부터 그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외무 관료 출신으로 유엔 사무총장 10년이라는 그의 경력은 언뜻 화려하다. 그러나 그 경력을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연결시키는 데는 한계가 따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강사로 등단한 김병준 교수도 `당의 반기문 총장 후보추대론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혹독하게 비판하지 않았던가. 유엔의 평화 수장인 사무총장이 퇴임 후 바로 대선후보로 입후보하는 것은 유엔헌장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물론 사무총장 퇴임 후 오스트리아의 대통령이 된 발트하임도 있지만 오스트리아 정치 지형은 한국과 너무나 다르다. 반 후보의 `기름 장어`라는 외신의 별명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사무총장 능력의 평가 절하도 검증의 대상이 될 것이다.
현재 대선 후보 여론 조사에서는 그가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각종 선거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여론이 종반까지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더구나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강한 이 나라에서는 정치와 거리가 있는 새로운 후보에 대해서는 여론조사는 항상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과거 안철수 후보도 장외의 후보 시절에는 단연 지지도 1위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현재 장외의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과 대선 후보 반기문에 관한 여론은 언제나 요동 칠 수도 있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과연 이러한 험난한 산을 무사히 넘을지는 아직도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