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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차

등록일 2016-05-20 02:01 게재일 2016-05-2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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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영 수필가
매실을 깨끗이 씻어 채반에 받쳐둔다. 청매실과 황매가 반반이다. 꼭지를 따고 상처 난 것들을 골라내고 물기가 마르기를 기다린다. 매실의 무게만큼 설탕을 준비한다. 유리병에 매실을 한 켜 넣고 그 위에 설탕을 넣고 켜켜이 매실과 설탕을 담는다. 맨 위쪽에 남은 설탕을 모두 붓고 뚜껑을 닫아둔다. 날짜를 적어 통에 붙이면 올해의 매실담기의 첫 과정은 끝이다. 이제 매실과 설탕이 적당히 녹아서 발효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처음에는 매실에 설탕이 녹는 것을 바라본다. 설탕이 녹고 그 녹은 물에 매실이 절여진다.

몇 해 전 담아둔 매실로 차 한 잔을 만들어 마신다. 설탕과 매실, 서로 다른 두 성질이 서서히 스며드는 과정을 바라보고 있으니 벗 생각이 난다. 매실차를 유난히 좋아하는 그 친구와의 인연의 시간을 생각해본다.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 서로의 생각들은 단단한 덩어리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면서 서로의 생각들이 서로에게 스며들고 서로 참 많이 닮아있다. 비슷하니까 어울리지 하고 말을 하지만 우리 둘은 결코 비슷하지도 닮지도 않았다. 서로의 생각이나 주장은 늘 다르다. 하지만 어떤 일과 문제를 해결했던 과정을 가만히 되짚어 보면 매실이 익어 가는 과정과 참 많이 닮은 듯하다.

어떤 문제점이 생겼을 때 서로의 생각들이 양보가 없으면 결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양보하는 마음은 매실이 숙성되어가는 과정에서 공기가 필요한 것과 닮았다.

몇 해 전 매실을 담을 때 일이다. 퇴근을 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베란다 유리창이며 벽이 설탕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매실담은 통 하나가 폭발했다. 뚜껑은 열려있고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이 온 사방으로 튀어있었다. 베란다에 놓아둔 몇 개의 통에서 유독 하나가 왜 폭발했을까? 베란다 청소를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통만 공기가 통하지 않게 꼭 닫은 것이 원인이었다. 매실 액을 만들 때 뚜껑을 꽉 닫아도 문제지만 또 너무 느슨하게 풀어놔도 문제가 된다. 뚜껑을 느슨하게 열어두면 설탕이 쉽게 녹는다. 녹는 과정에서는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 설탕 녹은 물에 매실이 푹 절여질 쯤 달달한 향이 진해진다. 하지만 그 달콤한 향에 초파리들이 침투를 한다.

매실 액을 만드는데 매실과 설탕의 촉매 역할은 공기와 빛이다. 넘쳐도 모라지도 않아야 한다. 빛이 넘치면 신맛이 강해지고 공기가 넘치면 초파리가 생긴다.

친구와의 만남에서 촉매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시간과 배려이다. 처음 만났을 때 서로의 생각들은 매실처럼 단단한 알맹이다. 두 생각들이 부딪치고 의견을 조율하는 데는 배려와 시간이 필요했다.

공기는 나와 친구의 관계에서 배려이고 빛은 시간이다. 생각들이 부딪칠 때 각자의 주장만 강조하면 그 의견들은 조율 할 수 없다. 생각은 한쪽으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야 한다. 매실 액을 담을 때 설탕도 적당히 들어가야 제 맛이 나듯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적당한 것이 좋다. 배려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야 한다. 친구의 생각이 자신과 다른 걸 알면서 배려가 넘쳐 잘못된 판단인줄 알면서도 내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적당한 배려와 시간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한다.

매실 액을 만드는 첫 과정에서 설탕이 녹기 시작할 때 거품이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설탕이 어느 정도 녹으면 고요해진다. 사람의 인연도 그러하다.

매실이 빛과 시간에 잘 숙성되어가듯 나도 벗과 배려와 시간 속에 성숙되어 왔다. 시간이 흐르고 그 의견들이 조율되면서 서로에게 스며들어 달달한 우정이 생겼으리라. 매실차 한 잔 마시러 오라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찻물을 준비하는 마음이 바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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