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포항 역사 앞을 지나면서 휑하니 뚫린 길을 보았다. 그 휑하니 뚫린 길을 보면서 휑하니 뚫린 심정을 느꼈다.
포항의 눈물과 기쁨, 그리고 오랜 역사를 간직한 포항역이었다. 일제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해 해방과 함께 건축된 포항역사는 거의 100년 가까운 포항의 산증인이다.
그 포항역이 몇 년 전 철도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하여 안심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포항역은 사라졌다.
폐철도 공원 조성 시 축소된 모형을 건립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 모형이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왜 한국은 역사를 무시하고 부수고 없애는 것일까?
옛 건물들과 유적지들은 사라지고 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던 필자가 다녔던 중고교, 대학 건물들은 사라졌다. 다른 곳으로 옮겨간 모교는 서먹서먹할 뿐이다. 오히려 아직 조금 흔적이 남아있는 옛 교정이 감흥을 줄 뿐이지 새 캠퍼스는 가보기가 싫을 정도로 정이 들지 않는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때 늘 지나다니곤 했던 종로2가에 있던, 역사적 보존가치가 높은 화신백화점 건물이 사라진 건 큰 충격이었다. 일제시대에 건축되어 옛 건축미를 가지고 있던 그곳은 초현대 건물로 바뀌었다. 중앙청 건물은 일제의 잔재라고 하여 폭파시키고 해체하였다. 단성사 국도극장 등 보존가치가 높은 건물들이 이젠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서울의 시티투어 버스가 손님이 없어서 폐지 압박을 받고 있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씨티투어를 해보면 서울이나 한국 대도시의 문화유산들이 얼마나 빈약한 지 알 수 있다.
파리나 런던, 그리고 최근 다녀온 바르셀로나나 리스본 등도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으로 형성되어 있다. 옛 건물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이러한 유럽의 오랜 도시들 뿐만 아니라 역사가 일천하다는 미국의 워싱턴 필라델피아 등도 방문해 보면 옛날 건물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한 역사적 건물들이 관광자원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자부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치욕의 역사적 건물, 부서진 역사적 건물도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후세들에게 교훈으로 삼고있다.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도 원형 그대로 다시 신축 보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몇 년전 옛 공산권이었던 동독의 도시 드레스덴대학에 들렀을 때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된 도시에서 프라우엔키르케(교회)를 완벽하게 재연하여 옛 역사를 지키려는 노력에 눈물을 적시었다.
우리의 경우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는 인근 경주도 도시전체가 현대화되어 유적도시라는 느낌이 빈약하다. 유적지들은 현대식 건물 사이사이에 간신히 유지되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다.
이렇게 바꾸고 부수고 하면서도 우리에게는 안 바뀌는 것들도 있다.
정부부처의 이름은 수시로 바꾸지만 운영방식은 구태의연하다. 관료주의, 권위주의 그리고 지나친 자율침해 등은 여전하기 떄문이다. 이런 관료주의 권위주의는 좀 바뀌어야 한다. 국회의 운영과 의사수렴 방식도 구태의연해 국민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신축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건물들은 천편일률적이며 상가의 디자인이나 간판들도 구태의연하다. 도시마다 매년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지만 도시의 특색을 가지고 있는 도시는 찾아보기 힘들다. 어느 도시를 가든 모양도 비슷하고 성냥갑 같은 아파트 건물들도 똑같다. 이런 천편일률적인 것들은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바꿔야 할 것과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을 서양 선진국에 비하여 거꾸로 가고 있다.
지금 부수어 버리는, 역사를 간직한 유산들은 잘 보존되어야 하고 구태의연하고 잘못된 행정 소프트웨어 입법부 의사결정 방식들, 단조로운 건물 디자인들은 과감하게 혁신적으로, 창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라진 포항역사를 대신하여 뚫린 그 길로 정말로 차를 몰고 가기 싫었다. 그 도로에서 눈길을 돌려 우회 길로 달리는 필자의 심정은 아마 지금 포항의 역사를 그리워하는 시민들의 심정과 같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