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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을 걷다

등록일 2016-04-15 02:01 게재일 2016-04-1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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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이웃에 사는 친구와 봄나들이를 했다. 어디라고 목적지를 정하지는 않고 차를 타고 가다가 한적한 시골길에 내려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발길 닿는 대로 한나절을 걸어 다녔다.

길섶에는 파랗게 자란 풀들이 성큼 다가선 봄을 알리고 있었다. 이상기온으로 예년보다 앞당겨진 봄이라고는 하지만 어느새 풀들이 이만큼이나 자랐을 줄이야. 벌써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었고 수양버들 휘늘어진 가지에도 연둣빛 새움이 돋아나고 있지만, 수북하게 자라난 풀빛에서 더 봄을 실감하는 것은 내가 시골 태생인 때문일 것이다.

파랗게 자란 봄풀은 농사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아낙네들은 보리밭 김매기를 시작하고, 아이들은 겨우내 외양간에 갇혀있던 소를 몰고나가 풀을 뜯기는 계절이 온 것이다. 2월 영동에 며느리들 문설주 붙잡고 운다는 말이 있듯이, 봄이란 그렇게 힘겨운 노동의 시작을 의미하던 시절이었다.

산자락에는 진달래가 만개했다. 나에게 진달래는 무엇보다 허기를 떠올리게 하는 꽃이다. 진달래꽃을 흔히 참꽃이라고도 하는 것은 아마도 먹을 수가 있는 꽃이라는 뜻일 것이다. 뒤를 이어서 피는 철쭉은 독성이 있어서 먹을 수 없는 것과 구별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다. 춘궁기로 일컬어지던 시절에 나는 배가 고프면 뒷산에 올라가 입안이 퍼래지도록 진달래꽃을 따먹었다. 맛으로 먹어본 게 아니라 허기를 달래려고 먹은 거였다.

약간 시큼한 맛이 나는 그 꽃을 보면 지금도 구미가 동한다. 어려운 시절에 많이 먹었던 음식들은 질려서 보기도 싫어지는 법이라는데 나는 왠지 그렇지가 않다. 꽁보리밥이든 진달래꽃이든 세월이 가도 그때의 그 절실함이 그다지 퇴색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 같다. 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그 식욕이야말로 생의 저 밑바닥에 가 닿는 삶의 절실함이 아니었을까. 친구와 나는 진달래꽃 무더기 앞에서 한참이나 꽃을 따먹었다. 마치 살아오면서 잃어버린 그 무엇인가에 대한 허기를 채워보려는 것처럼….

저수지 가에 선 버드나무에 파랗게 물이 올라 있었다. 물오른 버드나무가지를 보면 버들피리를 만들고 싶어지는 것도 시골에서 자란 사람의 정서일 것이다.

밋밋한 버들가지를 꺾어서 손아귀로 비틀어 속 줄기를 빼내면 굵은 빨대처럼 생긴 껍질이 남는다.

그 한쪽 끝을 깨끗하게 잘라서 겉껍질을 살짝 벗기면 그것이 떨판 구실을 해서 버들피리가 된다.

버들피리를 만들고 싶은데 칼이 없었다. 깨어진 유리조각이라도 있는가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버들피리 하나 못 만들면 시골내기가 아니다. 어려서 시골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대개 그런 임기응변에는 익숙하다.

자기 일은 모두 자기 손으로 해결해야 했던 옛날 시골 아이들이 뭐든지 엄마가 다 챙겨주는 요즘 아이들과 다른 점이다.

친구와 맨손으로 버들피리 만들기 시합을 했다. 칼이 없으니 이로 버드나무껍질을 잘라야 한다. 그런데 그 자른 단면이 고르지 않아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한참을 고심한 끝에 내가 먼저 보란 듯이 소리를 냈다. 조금 후에 친구도 성공을 했다.

우리는 장한 일을 해낸 아이들처럼 흐뭇해져서 마음껏 버들피리를 불어댔다.

버들피리 소리에는 어린 시절의 온갖 추억들이 들어 있다. 그 척박했던 삶의 곤고함과 궁핍했지만 질박하고 무구했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그리움의 선율이되어 흐른다.

`먼먼 젊음의 뒤안길`을 돌아와서 이제는 초로에 접어든 두 남자가 어느 봄날 석양이 내리는 시골길을 버들피리를 불며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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