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봄꽃 구경을 다녀왔다. 봄꽃은 천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대구에서 출발하여 광주 담양으로 가는 길가엔 온통 봄꽃들이 만발하였다. 남도 길에는 정말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꽃의 계절이 다가와 있었다. 총선을 사흘 앞둔 정치판은 요란하지만 자연의 섭리는 온 누리를 꽃으로 뒤덮어 우리를 반겼다.
어지럽고 혼란스런 4·13 총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문득 이 나라 정치인들도 이 대자연의 섭리를 하루 빨리 터득하였으면 한다. 이번 공천과정은 여야 가릴 것 없이 탈도 많고 말도 많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하는데 지나치게 권세를 휘두른 정치인, 떠나야 할 시간에 떠나지 못하는 정치인, 공천 파동의 원인을 제공한 뻔뻔한 정치인, 아직도 모든 것을 상대 탓으로만 돌리는 마타도어에 능숙한 정치인, 모두가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는 정치 행태이다. 이러한 정치인들은 새순이 돋고, 봉오리를 맺어 꽃을 피우다가도 때가 되면 조용히 떨어지는 자연의 섭리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공천 과정의 와중에서도 공천에서 탈락하자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고 백의종군하는 정치인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어찌 세상만사가 제 뜻대로만 되겠는가. 우리 주변에는 매서운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봄이 되면 꽃피우고 가을 되어 열매 맺는 자연의 섭리에 충실한 정치인도 더러 있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정치인은 성공할 수 있는 법이다. 이 나라의 정치인 중에는 기다리지 못하고 참지 못하여 열매만 급히 따먹으려다 실패한 정치인이 상당히 많다. 역천(逆天)자는 망하고 순천(順天)자는 흥한다는 역사의 교훈은 자연의 섭리이며, 이 나라 정치인이 지켜야 할 기본 규범이다.
봄꽃은 자기가 선 자리에서 남을 탓하지 않고, 조급하지 않고 자기의 고유한 빛깔로 조용히 봉사한다. 꽃은 결코 다른 꽃에 대해 시샘하지도 다투지도 않는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우리 여야의 정치 지도자들은 온갖 추태까지 다 보였다. 친박과 비박이 서로 눈을 부라리고, `공천 학살`과 `옥쇄파동`은 유권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자신들의 잘못을 석고대죄(席藁待罪)했지만 돌아선 민심이 돌아올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야당 역시 친노와 비노가 극한적으로 대립하다 급기야 당을 따로 차리게 되었다.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당 대표와 친노의 갈등은 결국 정치적 신뢰만 떨어뜨렸다. 우리 정치인들은 화려한 봄꽃으로 잠시 칭송받다 사라지기보다 가을 국화의 인내부터 배워야 할 시점이다.
이제 봄꽃은 어딜 가나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연분홍 벚꽃, 노란 옷을 차려 입은 산수유, 깨끗한 흰옷으로 갈아입은 백목련, 연록색의 수양버들, 산하의 봄꽃은 조화롭게 피어 있다. 꽃들은 시샘하듯 다투어 피지만 `네가 있어 나도 아름답다`는 자연의 조화만큼은 철저히 지킨다. 우리 선거판에는 새누리의 붉음, 더민주의 푸름, 국민의당의 연초록, 정의당의 노란색이 거리를 누비고 있다. 정원의 꽃들도 여러 색이 조화를 이루는데 이 나라 정당만은 색깔을 달리하는 정당은 인정치 않고 있다. 이들은 모두 상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술수를 부리면서도 정작 스스로를 돌아볼 줄 모른다. 이러한 정치판에서 상생의 정치, 조화의 정치는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인들이여, 산하에 조화롭게 피어 있는 꽃들의 지혜부터 배우길 바란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 정치인들의 탈당, 변신, 공천 탈락, 석고대죄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치 행위인가. 어느 것 하나 자연스럽지 못하고 순리에 따르지 않는 것 같다. 산하의 들꽃은 그래도 기다릴 줄 알고, 교만하지 않고 자기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꽃은 크다고 휘두르지 않고 작다고 연약하지도 않다. 우리 일부 정치인들은 이러한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러한 곳에서 정치에 관한 국민적인 불신은 더욱 증대될 수밖에 없다. 우리 정치인들은 거창한 공약보다는 자연의 순리, 꽃들의 지혜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