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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초리

등록일 2016-03-25 02:01 게재일 2016-03-2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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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영 수필가
새 학기가 시작 되었다. 꽃봉오리 같은 아이들이 학교로 향한다. 발걸음이 경쾌하다. 예쁘고 해맑은 아이들을 보니 최근 세상을 경악하게 하는 자녀폭력과 유기에 관한 뉴스들이 마음을 무척 아프게 한다. 몹쓸 짓을 한 가해자들은 어린 시절 가족의 따스한 관심을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바람직한 부모는 적당한 당근과 채찍으로 아이를 양육해야 하리라.

당근만 주면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채찍만 가하면 폭력적으로 성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의 매를 맞으며 자랐다. 거짓말은 하면 절대 안 되었고,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했다. 어겼을 경우에는 굵은 회초리를 해오라는 불호령이 내려졌다. 아버지의 명령은 나에게 법이나 다름없었다. 쌓아둔 나무더미에서 아버지의 팔 힘을 가늠하며 회초리를 찾고 있으면 어머니께서 내 새끼손가락보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손에 쥐어주며 방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버지 앞에 회초리를 내밀면 `이것도 회초리라고 해 왔느냐`는 소리가 천둥 같이 지나가고, 공기를 가르는 날렵한 싸리 나뭇가지는 뼛속까지 아리게 했다.

아버지는 마치 대문 옆에 서 있는 커다란 엄나무 같으셨다. 온몸에 가시를 돋우고, 악귀를 쫓는다는 엄나무. 마치 우리들에게 못되고 나쁜 버릇이 스며들지 못하게 지키는 수호신 같았다.

어머니는 달랐다. 큰소리로 나무라지도 않았다. 아버지께 혼이 난 다음날은 반듯하게 접은 양면괘지를 책가방 속에 넣어 두셨다. 퍼렇게 멍든 종아리가 많이 아프지, 매 맞고 울지도 않아서 엄마마음은 더 아프다, 씩씩하게 학교 잘 다녀오라는 따뜻한 편지일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빈 편지지 일 때도 있었다. 푸르스름한 새벽, 연탄불에 밥 짓는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의 회초리보다 더 철들게 한 어머니의 따스한 회초리였다.

내가 두 아이의 어미가 되었다. 연예인이 되겠다는 아이의 투쟁과 맞선 적이 있다. 아이는 침묵과 단식으로 대항했고, 가정의 분위기는 살얼음 위를 걷는 형국으로 변했다. 그 때 어머니가 생각났다. 호통을 치거나 매를 들지 않고 스스로 깨달아 철이 들게 하셨던 어머니의 편지 회초리였다.

꽃그림이 있는 분홍빛 편지지를 사 왔다. 첫 줄에 아이의 이름을 쓰고, 사랑한다는 말을 적었다. 이어 쓸 말이 가다듬어지지 않았다. 한참 동안 쓰고 보니 내 넋두리가 되고 말았다. 아이가 읽으면 어미의 잔소리 밖에 되지 않을 내용이었지만 곱게 접어 내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잠든 아이의 책가방 속에 살며시 넣어 두었다.

하교시간에 맞추어 아이가 좋아하는 갈비찜을 만들어 두고 귀가하는 아이를 맞이했다. 뾰로통한 얼굴에 살짝 어리는 고운 빛을 보았다. 갈비찜을 가득 담은 접시를 상 위에 올리며 아주 반가운 목소리로 같이 먹자고 했더니 슬그머니 젓가락을 들었다. 아이가 관심 있어 하는 이야기만 나누며 아이의 반응을 조심스레 살폈다. 아이는 고기 한 점을 집어 내 숟가락에 얹어 주었다. 매듭이 풀릴 것 같았다. 텔레비전을 켰다. 아이가 리모컨으로 채널을 고정시켰다. 나는 가장 멋진 연예인의 엄마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아이는 왕방울 눈으로 쳐다봤다. 엉켰던 실이 풀리기 시작했다.

모 대학교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 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려면 할 일은 한 가지 뿐이다.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는 것. `끼`와 `생각`만으로는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책상 정리를 하는 손놀림이 가벼웠다.

다음 날 아침, 등교한 아이의 책상 위에 봉투가 놓여 있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쓴 답장편지였다. 봄 햇살보다 더 따사로웠다. 채찍보다 당근이 더 강한 회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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