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잘못했으니 다 물어내요”
길에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서로 잘못을 탓하고 자기 책임 분을 줄이려고 하는 것은 흔히 길가에서 보는 교통사고 다툼의 풍경이다.
몇 일 전 포스텍에선 상당히 감동적인 강연이 있었다. 최고경영자과정 입학식에 초대된 오연천 울산대 총장(전 서울대 총장)은`경제적 강자의 책임과 가치`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는데 신선한 청중들의 공감과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미국 유학시절 뉴욕에서 차충돌 사고를 본인 잘못으로 일으켰고 유학생 형편으로 마음을 졸이면서 상대방에게 다가갔을 때 상대방 신사가 한말은 “Are you OK ?”(어디 다친데 없어요?) 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Of course, I am OK”(물론 괜찮아요)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그 신사는 이어 일행들의 안전을 확인한 후 자기 차량 수리는 모두 자기 보험으로 처리할테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떠났다고 한다. 떠나는 그 신사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가진 자의 아량과 책임`을 보았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 교수가 된 그는 얼마 안 있어서 유사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이번엔 상대방의 잘못이었다고 한다. 참석하려고 했던 회의장 근처에 거의 다다랐을 때 어떤 채소를 싣고 가는 트럭에 의해 추돌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때 문득 미국에서의 일이 생각났고, 그도 역시 그 채소트럭 운전자에게 “어디 다친데 없느냐?”고 묻고 내가 보험으로 처리할테니 그냥 가라고 했다고 한다.
어떤 모임에 사회를 보아야 하기에 급히 걸어서 갔는데 사회를 다 보고 나오니 그 트럭운전자가 기다리고 있었고 함께 자동차 수리를 하러 갔다고 하며, 수리를 맡기고 나오는데 고마워 하는 트럭운전사가 그도 모르게 수리를 하고 있는 차 뒷좌석에 각종 채소를 하나 가득 실어놓고 떠났다는 아름다운 일화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초기 로마 사회에서는 사회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헌납 등의 전통이 강하였고, 이러한 행위는 의무와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특히 귀족 등의 고위층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으로 인하여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줄어든 것도 계속되는 전투 속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천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이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다고 한다.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이런 소식도 들린다.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이 녹십자홀딩스 주식 56만주 등 재산 일부를 기증해 새터민 지원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뜬 이후 허 회장의 장남은 이 사회복지법인을 상대로 자신의 유류분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내 대부분의 기증재산을 다시 돌려받게 되었다고 한다.
유류분은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이 상속권을 가진 유족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을 경우 등에 대비해 법으로 일정 재산은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유족들은 부유한 상태에서 이런 소송을 건다고 한다. 그래서 `기부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요즘 유류분 분쟁으로 인해 재산의 사회 환원이라는 고인의 뜻이 희석되는 일이 생기면서 유류분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
가진 자, 경제강자가 좀 더 사회에 책임을 느끼는 그런 가치를 소유해야 하지 않을까?
가진 자, 경제강자가 사회에 책임을 갖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오연천 총장의 강연을 듣고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