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20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도 공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집권 여당 김무성 당대표와 공관위의 이한구 위원장 간의 공천 갈등이 노골화되고 있다. 당 대표는 이번 공천과정이 당헌과 당규에 어긋난다고 비판하면서 당 최고회의의 인준까지 거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외부 공천위원들은 당대표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주호영 의원은 1인 공천 신청 지역에서의 자신의 공천탈락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진영 의원은 이미 탈당했고 이재오 의원은 재심을 청구하였다. 김무성 대표는 공천과정을 비판하면서 주호영 등 6개 지역 공천의 재심을 요구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이 입후보한 대구 동구을은 아직도 공천 방식마저 결정되지 않았다. 그의 공천여부는 초미의 전국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한구 공관위 위원장은 유승민 후보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이에 후보 자신은 침묵으로 일관하여 버티기 작전에 들어가 있다. 친박에서는 박 대통령이 언급한 `배신의 정치`에 대한 응징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며 유승민 후보 당사자와 비박에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로서는 유 의원이 자진 탈당하거나 후보사퇴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유 의원측은 공관위에서 컷오프될 경우 탈당하여 무소속으로라도 입후보한다는 입장이며, 무소속 연대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공관위가 여론의 역풍을 의식하여 결단을 내리기도 어려운 형국이 되어 공천 파행은 장기화 되고 있다.
집권 여당의 이번 공천 갈등의 근원은 당내의 계파갈등에서 비롯되었다. 과거 정권에서도 당의 주류와 비주류간의 공천 갈등은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공천 갈등으로 공관위의 활동이 중단되는 등 당 지도부의 갈등으로 비화된 적은 없다. 따지고 보면 이번 공천 갈등의 근원은 최고 권력자의 눈치 보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주요 지역의 공천과정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의 계파 갈등은 당대표 선출과정에서 시작하여 인사 갈등에 이어 급기야 공천갈등으로 증폭되고 있는 셈이다. 어느 조직이나 주류와 비주류는 존립할 수 있으며 정당도 예외는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설득과 타협이라는 조직 내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힘의 논리로 해결하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공천의 악순환 구조는 한국 정치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2008년 친박 공천 탈락이 이번에는 비박 탈락이라는 악순환으로 연결되고 있는 듯하다. 당 후보 공천과정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이전투구의 모습은 정당정치의 본질을 이탈한 행위이다. 공당(公堂)이 아닌 붕당(朋黨)이나 사당(私黨)에서나 볼 수 있는 구태의 정치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 공천(公薦)이 사천이나 타천으로 이루어진다면 이는 조선시대 당파 정치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러한 파행이 지속되는 한 진정으로 소신있는 정치인은 기대할 수 없고 상부의 눈치만 보는 기회주의적 정치인은 양산될 수 밖에 없다. 3김 시대가 끝난 지 오래건만 우리 정치에는 아직도 친박, 비박, 친노, 비노, 친이, 친문이라는 인물 중심의 계파 정치가 잔존하고 있다. 결국 총선직전의 이러한 파행적인 공천은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과 정치적 냉소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공천 갈등의 악순환은 반드시 종식되어야 한다. 과거 비주류 공천 탈락의 한을 다시 재현하여 앙갚음을 반복한다면 결국 퇴영적인 구태의 정치만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새로 구성되는 20대 국회는 먼저 정당 공천의 확고한 기준부터 법제화 할 필요가 있다. 말단 공무원을 선발하는데도 엄격한 규정과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 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 후보의 정당 공천이 외부의 입김이나 계파 보스의 자의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이는 분명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일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정당별 후보의 공천기준은 자의적인 잣대로 행사되지 않도록 성문화된 규정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공천 파행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