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등록일 2016-03-18 02:01 게재일 2016-03-18 17면
스크랩버튼
오순이 수필가
그녀의 얼굴이 해쓱하다. 이생의 삶이 사라져 간 공간에 그녀와 나는 또 다시 마주 보고 섰다. 절망과 희망이 교차 했던 순간들이 아스라이 느껴진다. 생사를 넘나들던 그녀의 삶이 시간을 거슬러 환원된다. 현실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와 피할 수 없이 맞닿아 있다.

고향친구의 모친상으로 모교 동기생들과 장례식장을 찾았다. 조문객들 틈에 멀찍이 앉아 있던 그녀가 불편한 몸을 가누며 내손을 잡아당겼다. 흰 머리카락이 드러난 긴 생머리를 동여매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주름살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세상은 그녀를 현실 밖으로 밀어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오래 전, 그녀는 교통사고로 한동안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전신의 반 이상을 붕대를 감은 채 부기가 부석한 얼굴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의식이 돌아온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괴었다. 고통의 수위를 넘어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보였다. 드러내지 못하는 속내가 회한으로 엉겨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으리라.

그녀의 삶이 마치 폐허처럼 허물어져 낯설게 다가왔다. 미동 없이 누워 있는 몸에는 링거 줄이 어지럽게 이어져 있었다. 병실 밖 풍경에 눈길이 머문 순간, 코끝의 매운 느낌이 단지 그녀 때문만은 아니었다. 생사의 경계에서 가는 생명줄을 이어가고 있는, 세상과 단절된 중환자실의 어둡고 무거운 풍경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와 나는 고향에서 학교를 같이 다녔다. 흉허물 없이 마음을 터놓고 지냈던 친구였다. 도시의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면서 소식이 뜸해졌고, 종내는 연락이 두절 된 채 시간이 흘렀다. 결혼을 하고 친구들이 하나 둘 연락이 되면서 소식이 닿았다.

가슴이 답답할 때면 해안가를 한 바퀴 돌고 온다며 뜬금없는 기별이 올 때도 있었다.

막 잠에서 깬 듯 부스스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그녀의 남편이 얼굴을 내밀었다. 여느 가정의 일상과는 다른 무거운 기운이 앉은 자리를 불편하게 했다. 남편과의 잦은 충돌로 그녀의 삶은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로웠다. 지칠대로 지친 그녀는 그에게로 향했던 마음을 거두었다.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육신의 장애다.

몇 차례의 수술 끝에 겨우 목발에 의지해 걸을 수 있게 됐다. 성대를 다쳐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뱉어 내는 말에는 삶의 강한 애착이 묻어난다. 수없이 나락으로 곤두박질 쳤을 시간들이 그녀를 짓눌렀다.

세상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애초부터 잘못된 인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믿었던 남편의 배신은 그녀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까지 이어졌으니 말이다. 헛된 욕망이 빚어낸 현실 앞에 인간의 이기심이 어디까지인지 그 한계를 묻고 싶었다.

세상바람에 휘청거리던 그녀가 답답했다. 집착의 끈을 놓고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다. 이 또한 세상의 잣대로 저울질한 입바른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당사자의 입장이 아니고선 함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되돌리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 버렸고, 먼 길을 지나와 버렸다.

팽팽한 삶의 끈을 움켜쥐고 안달복달한 지난날들이 스친다. 과거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현실을 흔들기도 한다. 현실과 맞닿은 미래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삶의 과제들을 떠안긴다. 더디 흐르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어느새 반백의 문턱에 서고 보니 잃을 것도, 움켜쥐고 누릴 욕심도 없다. 세상 밖으로만 촉을 세우던 일도 내 안으로 귀를 연다. 예민하고 발끈했던 성정이 한결 둥글어졌다. 꺾이지 않는 유연함을 세상바람에 흔들리며 체득한다. 그녀도 그랬으면 좋겠다.

Essay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