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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까지 죽이는 비정한 인간상들

등록일 2016-03-14 02:01 게재일 2016-03-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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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최근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부부가 합세하여 어린 자식을 살해하고 몇 년간 방치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것도 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목사 부부의 소행이란다. 얼마 전에는 20대 초반 부부가 3개월 된 딸을 침대에서 두 번이나 떨어뜨려 그대로 죽게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남편은 술에 취해 모르겠다고 했고, 아내는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아기를 그대로 두어 죽게 했다는 것이다. 오줌을 가리지 못한다고 7세 남아를 계모가 모질게 학대하다 죽게 되자 암매장한 충격적인 사건까지 있었다.

어쩌다 자식까지 서슴없이 살해하는 비정한 사회가 되었는가. 사회에 만연된 생명 경시현상이 이제 가정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가히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 인간성의 타락이 어디까지 갈지 심히 두렵다. 우리 공동체의 인면수심(人面獸心)이 초래하는 참극이 이제는 종식되어야 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라는 이 나라에서 발생한 이러한 비극은 무엇으로도 변명하기 어렵다. 가끔 외국의 토픽에서 본 이러한 충격적인 살인 사건이 이 나라에 번지고 있으니 할 말을 잃어버린다. 결국 우리의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인간 생명을 중시하는 일인데 우리는 너무 탈선해 버린 결과가 아닐까. 우리 사회 공동체는 이러한 참극 하나 막지 못하고 구멍이 난 것이 틀림이 없다.

여러 해 전 몽골의 고비 사막을 여행하다 천막집 게르에서 며칠을 묵은 적이 있다. 이곳에는 낮의 뜨겁던 사막 열기도 밤이 되면 서늘해져 잠자기 좋다. 낮에 잠시 탔던 낙타도 게르 옆에서 함께 자는 밤이다. 하늘의 찬란한 별 무리, 주먹크기만한 별들이 머리위로 덮쳐와 신비한 느낌까지 지울 수 없었던 밤이다. 나는 그날 저녁 무척 지쳐 피곤했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새벽녘 잠이 들려는데 게르 밖의 낙타의 구슬픈 울음소리는 또다시 나를 깨워버렸기 때문이다. 다음날 알았지만 낙타가 밤 세워 슬피 울었던 이유는 전날 자기 새끼를 팔았기 때문이란다. 나의 가이드는 새끼를 팔면 낙타가 보통 일주일 이상 새끼를 찾으며 운다고 전해주었다. 잃어버린 새끼를 찾아 우는 낙타의 모정 앞에 잠을 이루지 못한 그 밤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동물도 이러한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어떻게 자식마저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사회에서 빈발하는 자녀 살해라는 엽기적 사건을 어찌할 것인가. 한낱 보잘 것 없는 새들도 먹이를 구해 어린 새끼의 입에다 넣어주는데 자식을 굶기고 구타하고 그도 모자라 죽음으로 몰아가는 행위는 결코 인간의 행위가 아니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이 정신 이상자의 소행이 아닌 멀쩡한 부모의 행동이라니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동물보다 못한 인간들의 이러한 추악상 앞에 우리 스스로 인륜을 논할 자격도 없다. 법은 이들에게 아동 학대법이나 형법상의 살인죄를 적용하여 엄벌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륜태의 상실을 어찌 법으로만 막을 수 있겠는가. 독일의 법 철학자 예리넥이 일찍이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하였다. 우리 공동체의 도덕성 회복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가정 폭력과 살인을 방지하기 위한 처방전을 마련하여야 한다. 가정 문제의 근원은 부서진 가정(broken family)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가정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공동체의 구조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우리 가정의 해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혼율이 초래한 당연한 비극임이 틀림이 없다. 우리 사회의 극단적 이기주의는 가정폭력과 가족 살인이라는 인륜태(人倫態)의 상실로 이어진 결과이다. 우리는 지금 부터라도 가족 결속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우리의 복지 정책도 교육 정책도 가족과 이웃에 관한 관심을 제고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종교인구가 날로 늘어나는 우리의 종교도 자신의 구원만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의 연대성 회복에 더욱 관심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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