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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6-02-12 02:01 게재일 2016-02-1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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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호수필가
사람들은 새해 이른 새벽 산으로 오른다. 일출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불그스름한 여명을 앞세우고 떠오르는 해덩이를 바라보며 두 손을 모은다. 그들은 해님을 향해 한결같이 저마다 더 윤택하고 탄탄한 인생길로 바꾸어 달라며 소망한다.

나도 사람들 따라 새해 이른 새벽 산으로 오른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다. 산 위로 오르는 초입 길은 지난여름, 소나기에 흙이 씻겨 내린 탓에 알몸으로 드러난 뾰족한 송곳 돌, 날카로운 칼 돌로 즐비했다. 그러나 나는 굳이 그 돌들을 요리조리 피하지 않고도 뚜벅뚜벅 걸어 갈 수 있다. 밑창이 단단한 등산화를 신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올라갔다. 산밭 울타리로 심어놓은 탱자나무 옆, 토끼 길을 지나야했다. 앙증스런 탱자나무는 가시 달린 가지를 겁 없이 길 쪽으로 쭈욱 뻗어 가뜩이나 좁은 길을 반쯤이나 가로막았다.

위세 당당한 훼방꾼처럼 턱 버티고 서있는 탱자나무 가지의 높이와 길이에 맞추어 온몸을 낮추었다가는 펴며 간신히 그 길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산 중턱, 어머니 산소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메고 온 배낭에서 꺼낸 막걸리 잔을 정성껏 올렸다. 간밤에 내린 진눈개비로 덮인 잔디 위에 엎드렸다. 산소 옆 잣나무 가지에서 노닥거리던 겨울바람들이 기어 내려와 목덜미로 파고든다.

예순 여섯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

가난한 아버지를 만나 남의 집 대문 옆 단칸방을 얻어 신접살림을 차렸던 어머니의 인생길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조금 전, 산으로 오르는 초입 길을 뒤덮었던 모난 돌들보다 훨씬 더 뾰족했던 가난의 편린들을 어머니는 맨발로 밟고 지나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남들이 신고 있는 고무신을 결코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저 이게 바로 당신의 운명이려니 했다.

앙칼스런 탱자나무 가시로 뒤덮인 좁은 길로 접어들었을 때, 배움이 없었던 내 어머니는 혼자서 얻은 지혜와 용기만을 믿었다. 어머니는 우리 오남매를 바싹 가슴 속에 묻었다. 얇은 옷조차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 등을 탱자나무 가시에게 성큼 내어주시고는 게걸음으로 조심조심 그 길을 빠져나오셨다. 그러자니 어머니는 얼마나 겁이 났을까. 얼마나 그 길이 멀게만 느껴졌을까.

세월이 흘렀다. 언제나 당신에게 무거운 등짐이었던 우리 오남매가 모두 결혼을 했다. 이제 오남매는 멍든 어머니의 몸을 추슬러 드릴 때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어머니의 발바닥에 생겼던 굳은살이 척 벌어졌고 가시에 찔린 등 언저리가 깊게 곪아 있었다. 몸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늦게서야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나는 괜찮다고만 했다.

우리 오남매는 그런 어머니를 위해 봄, 여름, 가을, 겨울 예쁜 꽃들이 피어날 행복의 길을 만들어 드렸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오남매가 어머니를 부축하여 겨우 올려놓은 행복의 길에서 한 발자국을 떼는가 싶더니 그만 풀썩 주저앉아버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일으켜도 어머니는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끝내 어머니는 홀연히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길은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십여 년 전, 우리 곁을 떠나가신 내 어머니는 아직도 돌아올 길을 마련하지 못하신 모양이다.

산소 앞에 꿇어 앉아있으면 안타까움과 죄스러움에 가슴이 조여든다.

고개를 들었다. 산꼭대기로 오르는 오솔길 위로 떨어진 다복솔잎들이 폭신한 융단처럼 깔려있었다. 그 오솔길은 솜처럼 가벼운 구름들이 떠있는 쪽빛 하늘로 이어져 있었다. 어머니에게로 가는 길이다. 아니다. 당신 대신 외아들인 내가 걸어보라고 내어주신 그 길이었다.

`어머니. 이 아름답고 편안한 길을 함께 걷고 싶습니다. 당신이 좋아하셨던 손자랑 손녀와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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