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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명절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6-02-11 02:01 게재일 2016-02-1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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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형과 아우들은 부산에 있는데/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 못하나/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귀천(歸天)의 시인` 천상병의 `소능조(小調)` 전문이다. 그가 대학 다닌 1960년대는 보릿고개 시절이었다.

서울 부산간 15시간씩이나 걸리는 완행열차 표 값조차 없었던 그는 명절날 서울 자취방에서 홀로 앉아 이 시를 썼다.

제목을 왜 `소능조`라 붙였을까? 명절날 고향에 못가고 외로이 누워 있는 자취방이 흡사 `작은 능묘` 같았던가? 돌아가신 부모는 고향 산소에 묻혀 있고, 자기는 죽지 않았는데도 서울 작은 무덤에 묻혀 있고, 그래서 생각해보면, 형제 자매도 못 보는 자신이 너무 기 막혀 “인생은 깊은 것”이라 한 것인가.

그런데 기막힌 젊은이들이 아직 많다. 여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부모 친척들이 무서워서 `피난`을 가는 청년들이 숱하다. “그런 작은 회사 다니려면 고등학교만 나와도 된다. 언제 대기업에 들어가려느냐” “취직은 언제 하냐” “결혼은 언제 하려느냐” 그런 닦달이 만드는`명절 공포증`을 피하는 방법이 여럿 개발돼 있다.

일부러 명절에 아르바이트를 만드는 `피신용 알바족`, 고향 갈 기차표 대신 동남아행 비행기표를 사는 `결혼 질문 피신족`들도 적지 않다. 또 `온라인 마트`들은 자취방이나 기숙사에 머무는 청년들을 위해 `우렁각시 세트`를 내놓았다. 즉석밥과 참치통조림, 떡국, 라면, 부침가루, 햄 등 명절 분위기를 내면서 혼자 해먹을 수 있는 `식품 세트`다.

취업준비생들을 위한 `명절대피소`까지 등장했다. 대형 강의실이나 스터디룸이나 자습실 등을 무료로 개방하는 학원들도 있다. 이번 설에도 1천명 정도가 `명절스트레스`를 피해 이 곳을 찾았다고 한다.

“개 보름 쇠듯”이란 속담이 있다. 보름날 음식은 나물 일색이라 개가 먹을 뼈다귀가 없다. 일자리를 못 구해 개 보름쇠듯하는 청년이 새해에는 좀 줄었으면 한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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