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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의 온천궁

등록일 2016-01-29 02:01 게재일 2016-01-2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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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연미 수필가
이곳은 중국의 찬란한 역사가 숨 쉬는 곳 서안(西安)이다. 중국의 역대 황제들의 온천궁과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발자취가 있는 곳이다. 흥했던 국운이 황제와 애첩의 사랑 놀음에 패망의 길을 걸었던 안타까운 역사의 고장 서안의 화청궁(華淸宮)을 어찌 지나칠 수 있으랴.

입구에 들어서자 화려한 전각 앞에 너른 연못이 먼저 반긴다. 여산(驪山)이 감싸 안은 이름 높은 그 화청지다. 현종과 양귀비가 밀어를 속삭이며 수없이 거닐었을 연못이 아니던가. 달콤했던 그들의 애틋한 사랑이 오래도록 이어지지 못함이 안타깝기만 하다. 황제들의 삶이 묻어있을 겨울 온천탕이 슬쩍 궁금해진다.

발길을 옮긴 곳은 황제들의 어탕(御湯) 유적박물관이 있는 앞마당이다. 정원 중심부에는 키가 크고 풍만한 육체를 자랑하는 양귀비 석상이 우뚝 서 있다. 절세미인 양귀비라 해서 유심히 보았다. 그런데 참으로 묘하다. 양귀비의 발은 중국여인에게 행해졌던 전족관습에 의해 발길이가 10센티미터도 안 된다 하였거늘 석상의 양귀비 발은 작지도 않고 아주 고운 발이다. 전족으로 구부러진 흉한 발을 차마 조각하지 못한 것인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황제들의 온천탕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당태종의 온천 성진탕(星辰湯)이다. 이곳 온천수는 온도와 좋은 수질 덕분에 천하제일의 어천(御泉)이요, 동방의 신천(神泉)이라고까지 칭송받은 곳이다. 현종과 양귀비의 욕탕보다 100년이나 앞서 지었다는 당태종의 성진탕은 원래는 노천탕으로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목욕을 한 곳이다.

천장도 없는 황제의 온천탕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밤이다. 솟구치는 뜨거운 온천수는 여산주변을 수증기로 가득 채워가며 이곳 황제의 욕탕에 도달한다. 차가운 청옥석의 냉기가 서서히 온천수의 황금비율을 맞출 즈음, 국사(國事)에 지친 태종 황제는 육중한 몸을 이끌고 궁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탕 안으로 들어간다. 황제가 온천수에 몸을 녹이는 동안 엄동설한(嚴冬雪寒) 밖에서 황제의 안위(安危)를 지키던 신하들은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른다. 매서운 바람은 눈과 한데 섞이어 머리 조아리고 있는 신하들의 뺨을 세차게 때린다.

다행히도 황제는 신하의 독설도 능히 받아주던 성군(聖君)이 아니던가. 추위에 떨고 있던 그들을 누각 안으로 들어오도록 배려해 주는 황제를 위해 신하들이 무릎을 꿇어 머리를 조아린다.

성군이 머물렀던 곳의 온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건만 세월의 흔적 속에 후세 사람들은 황제의 욕탕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다. 발 빠르게 앞서 가던 여행 안내원이 가리키는 곳은 관원들의 욕탕이다. 황제에게 음식을 올리던 요리사와 관원들이 쓰던 욕탕에는 황제가 목욕했던 물을 다시 이용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당태종이 백성들한테 성군으로 불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던가. 당태종은 신하 위징의 수많은 간언을 과감하게 받아들여서 자신의 잘못과 욕심이 지나치지 않도록 스스로 채찍질 했던 지혜로운 황제였다. 그는 역대 황제들의 잘못된 행실과 뛰어난 업적을 자신의 거울로 삼았다. 성군과 패군의 갈림길은 과욕을 어찌 다스리는가에 달렸나 보다.

부귀영화를 누리며 시절 모른 현종과 양귀비 옆에는 국운을 걱정하고 충언하는 신하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단 말인가. 어찌하여 모두가 과욕의 도가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까. 현종은 온천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수없이 보았을 터인데 역대 황제의 거울 교훈을 잊었단 말인가. 역사거울을 통해 당나라 현종이 교훈으로 삼고 실천했더라면 모든 일에 정도(程度)를 지킨 성군으로, 백성들로부터 존경심을 받았을 것이다. 그뿐이랴. 안녹산의 군대를 피해 고달픈 피난길을 걷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태평성대가 무너진 것이 양씨 일가 때문이라고?성난 군사들 앞에 양귀비의 목숨을 내어주는 비통함은 겪지 않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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