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정계에 입문한 그녀는 2008년 민진당 주석이 됐다. 당시 천수이벤 총통이 부패로 낙마했고, 민진당의 지지도는 밑바닥권이었으며, 다들 당 주석직을 사양했다. 한국 한나라당이 `차떼기정당`이란 오명을 쓰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을 당시 박근혜 의원이 대표를 맡아 `천막당사 정신`으로 당을 회생시킨 것과 같이 차이주석도 청렴하고 진실된 이미지로 당을 살려냈다. 당내 파벌싸움을 잠재우고, 9차례의 선거에서 7번의 승리를 이끌어내 `선거의 여왕`이란 말도 들었다. `파우스트`의 “구원은 여성성에 있다”는 말이 실증된 것.
차이 당선자의 이미지는 소박·검소·진실·원칙·청렴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머리는 단발의 생머리였고, 옷은 늘 수수한 이웃집 아줌마 같았다. 다른 후보자들처럼 고래고함 사자후를 토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설득하면서도 단호하고 명료한 어투에서 신뢰성이 더 묻어났다.
그것은 “저런 총통은 적어도 부패에 휘말리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을 주었다. 그녀는 당선 후 첫 발언에서 “내 롤모델은 독일 메르켈 총리”라 했다. 동독 객가 출신인 메르켈 총리는 유럽 전역이 경제위기에 처했을 때 유일하게 `남을 도울 수 있는` 호황을 이뤄냈다.
차이 당선자의 양안(兩岸·대만과 중국) 정책은 소삼통(小三通·항공편, 우편거래, 교역)으로, 중국대륙과는 독립성을 유지한다. 한국과 대만은 여성 지도자를 두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친구를 얻었다.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