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는 심각한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터키는 이슬람국가였다. 그런 나라가 서양의 기독교를 허용하겠다 했으니 이슬람 원로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이때부터 혹독한 숙청이 시작됐다.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슬람 원로들부터 잡아 죽인지 1년 여가 지나자 안티(anti)가 사라졌다. 민주주의 선거에서 케말 파샤 장군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는 약속을 지켰다. 종교의 자유와 선거제도, 3권분립 등 서양의 정치 행정 제도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국회는 `국가원수 모독죄`를 만들었다. 그것은 거의 `신성 모독죄`에 버금가는 법이었다.
국민의당 한상진 창당준비위원장이 4·19 묘지를 참배한 뒤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 분이었고, 그 공로를 결코 잊어서 안된다”했고, “그의 과(過)만 말해서 안 되고 공(功)도 인정해야 한다. 역사를 공정하게 양면을 같이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좌파들은 결코 공을 보지 않는다. 강남좌파라 불리우는 조국 교수는 “한상진 교수는 (이승만을)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라는 맥락에서 국부라 했는데, `1948년 건국설`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북한은 `건국`이고, 남한은 `정부 수립`이라는 것이다. 결국 정통성 있는 국가는 북한이고, 남한은 `반동 정치집단·미해방구`란 소리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유엔군을 불러들여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바람에 적화통일을 못한 그 원한 때문에 국부를`원수`로 여기고, 북한과의 경제 격차를 크게 벌여놓은 박정희 국가중흥 대통령을 줄기차게 비난하는 세력을 어찌해야 하나.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