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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랑대

등록일 2016-01-15 02:01 게재일 2016-01-1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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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매 수필가
햇살이 내린다. 배롱나무 꽃잎에 앉아 발갛게 타들어 간다. 흙 담장에 기댄 접시꽃은 장마에 지친 얼굴을 매만진다. 세상을 모두 태워버릴 태세로 덤벼드는 더위에 맞서있다. 잠시 서 있었는데도 내 몸은 뼛속까지 타들어 가는 것 같다. 온종일 불볕더위와 싸워야 하는 남편의 그은 얼굴이 생각난다. 짐을 가득 싣고 뜨거운 사막을 걸어가야 하는 낙타처럼 고단한 그의 모습이 이불 위에 어린다.

첫 만남에 설렘은 없었다. 싫지 않은 정도였다. 가난한 복학생이라는 걸 단번에 알았다. 저녁을 사 준다기에 분식집으로 이끌었다. 밥을 먹고 왔다며 그가 남긴 김밥, 그것이 부부의 인연으로 자랐다. 이상형이 아니었단다. 오늘 하루도 공쳤구나! 생각했을 테지. 자기가 남긴 김밥을 날름날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예뻐 보였단다. 가랑비에 옷 젖듯 우리는 서서히 젖어들었다.

사슴처럼 기대어 단꿈을 꾸던 날이 아련하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부러움 없는 일상이었다. 고요한 숲에 돌개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남편의 일터를 휘저어 버린 거센 바람의 위력에 절망했다. 그의 어깨가 점점 내려앉았다.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처자식의 눈망울을 차마 외면할 수는 없었다. 절망의 끝에서 작은 끈 하나를 잡고 떠나던 뒷모습이 어제 같다. 그렇게 그는 떠돌이 인생을 시작했다.

휴일이면 오가는 차비가 아까워 숙소를 지켰다. 살림이 하나 둘 일어갈수록 몸은 더욱 지쳐 갔으리라. 어깨에 얹힌 짐의 무게를 참고 또 참았으리라. 당신은 여자로 태어나서 참 좋겠다던 그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다. 얼마나 힘들면 그런 말을 할까. 배웅하고 돌아온 어느 저문 날, 마시다 만 커피 잔에 형광등 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까맣게 태운 마음 한 자락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무엇이 남편을 커피 한잔 마실 여유도 없이 내몰았는가. 문밖에 등 굽은 가을이 어찌 내 맘을 알았는지 찌르르 찌르르 울어 주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며 주말 부부인 나를 부러워하는 눈길, 나도 모르게 서서히 남편의 부재에 익숙해져 갔다. 조심스럽게 취미 생활을 시작했다. 치열한 적지에 그를 내몰아 놓고 이래도 되는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가. 또 얼마나 이기적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우울증이 올 수도 있음을, 그것보다 낫지 않을까 애써 합리화시키며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 했다. 취미생활의 종류가 차츰차츰 늘어났다. 그즈음 노력의 결과로 남편의 나무에도 열매가 익어 갔다. 여유가 생긴 남편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집을 찾았다. 꼼짝없이 남편에게 맞춰야 하는 현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혼자 숙소를 지킨다고 생각해도 마찬가지일 터. 짚신장수와 우산장수 아들을 둔 부모처럼 마음이 복잡해졌다.

늘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했다. 아내의 다양한 취미 생활에 진심으로 관심을 두었다. 풍물은 쇠가 최고인데 이왕이면 쇠를 배우지 그랬냐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휴일에 홀로 집에 남겨져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그의 태도에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별것 아닌 일에 화를 내며 심술을 부린다. 치맛자락을 붙잡고 매달리는 아이처럼 함께 놀아 달란다. 홀로 지내야 했던 외로움의 시간이 그동안 상처로 곪아 있었나 보다. 고름을 철철 흘리며 아픔을 호소하는 그의 모습이 내 책임으로 다가왔다.

버티고 버텼을 것이다.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침내 마땅한 핑계를 잡은 듯 자신을 놓아버린 것이 아닐까. 이제야 알았다. 남편은 내 인생의 줄을 받쳐주는 바지랑 장대였음을. 늘 씩씩하게 그 자리에 있었기에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그의 고통을 짚어보지 않았다. 무심한 아내였음이 부끄럽다. 그가 더 지치기 전, 그의 곁에서 젖은 빨래를 말리는 바람이 되고 싶다. 장대 끝에 잠자리로 내려앉아 지친 마음 어루만지는 약손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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