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월 1일 낮 12시 30부터 28분 45초간의 신년사를 낭독하였다.
배경화면에는 모란봉악단의 공연 모습과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발사 장면이 등장하였다. 그의 신년사에는 이례적으로 핵문제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고, 인민 생활과 통일에 대한 언급이 부쩍 늘었다. 신년사 내용 중 `핵`이나 `수령`이라는 용어가 대폭 줄고, `경제`나 `통일`에 관한 언급이 대폭 증가한 것은 일견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이 이번 신년사에서 종래의 `수령`론을 많이 언급하지 않은 것은 북한 정권이 어느 정도의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증좌다. 김정은 집권 이후 그는 군부의 숙청과 강등 등 권력의 안정 장치를 마련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2012년 7월 군 총참모장 이영호의 해임으로부터 시작한 숙청 작업은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의 처형으로 이어졌다. 2015년 4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까지 공개 처형하는 등 권력 측근의 숙청은 계속되었다. 최근 권력 핵심인 최용해까지 집단 농장의 `혁명화 교육`으로 내몰았다가 복권되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이 이제는 수령론을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권력의 안정 장치가 마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정은이 이번 신년사에서 북핵 문제를 일체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이례적이다. 김정은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천명하여 미국에 대해 적대정책을 표명했던 과거와는 대조적이다. 북한이 핵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우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직간접적 수단을 동원하여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해 왔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정치·군사 보다는 경제 문제를 주로 언급하고 있다. 그는 경제 분야의 과업 중 `전력(電力) 문제` 해결에 전당적·전국가적 힘을 넣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는 북한의 에너지 문제의 해결 없이는 경제 회생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의 결과일 것이다. 그는 `인민 생활이 제일의 국사(國事)`라고까지 민생을 앞세우면서 `경제 강국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해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 `자강력(自强力) 제일주의`라는 신조어까지 사용했다. 북한 당국이 형식적이나마 정치·군사보다 경제를 우선 강조하는 것은 늦으나마 다행한 일이다. 이러한 그의 인식 변화가 북한의 개혁·개방으로 급속하게 연결될지는 의문이지만 남북한 경제 교류와 협력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우리 정부를 `반통일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지난해 남조선 당국은 우리 체제 변화와 일방적인 제도 통일을 추구하여 북남 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악화시켰다`고 비난하는 내용도 포함하였다. 이는 북한 당국이 남한에 의한 체제 흡수 통일을 가장 우려하고 있음을 방증한 것이다. 그는 신년사에서 `내외 반통일 세력의 도전을 짓부시고 자주 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 가자`고 다짐했다. 김정은의 이러한 언급은 통일에 관한 실천적 의지라기보다는 북한 주민들의 내부 결속용 이념지향성이 강하다. 그러나 김정은은`올해는 누구와도 마주 앉아 민족 문제·통일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것`을 언급하였다. 이는 북한 당국이 8·25 합의를 존중하고 남북 대화는 계속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올 병신년 우리는 4·13 총선을 치르고, 북한은 5월 36년만의 7차 당 대회를 앞두고 있다. 우리의 총선에서는 남북관계와 통일 문제가 주된 쟁점이 될 수는 없다. 북한 노동당 당 대회 역시 통일에 관한 근본적인 입장 변화를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시점에서 남북대화가 본격적으로 재개되어 민족의 통일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