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성노예 문제로 꼬여가는 한·일 관계가 이번 판결을 기점으로 변화를 보일 것이다. 재판을 앞두고 일본정부는 외교채널 뿐 아니라 정계와 민간인에까지 로비를 했고, 한국 외교부는 법원에 `의견서`를 냈다. 역사문제·독도문제 등과는 별도로 문화·경제에서는 유화적 관계가 필요하다. 한일관계가 꼬일 수록 재일 교포들의 삶이 고달파진다. 일본 극우세력들의 `조선인 미움증`이 심해지면, 교포들의 사업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정치와 경제·문화를 분리해 생각하자. 과거사에 발목잡혀 있지 말고 전향적으로 나아가자”는 여론이 일어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가토 다쓰야 재판`이 열렸으며, 변화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전시회를 열었다. 22일부터 내년 2월 21일까지 일본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 380점을 전시하는데, 국내에서는 처음 보는 일본 3세기 중엽에서 6세기 후반까지의 고문화재들이다. 그 당시 일본은 왕성한 외교력을 보였다. 열심히 선진문화를 흡수하려 애쓴 것이다. 따라서 신라 가야 백제 등 인근 국가들과의 문화교류에 열심이었고, 신라의 문화유적이 일본 고분에 남아 있다. 특히 나자와센즈카 126호 고분은 `신라인의 무덤`이란 이름이 붙었다.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신라 고분에는 흔히 출토되는 유물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전시는 3부로 나뉘었는데, 1부는 하미코 여왕이 고분시대를 열 무렵의 주술적 청동거울 돌팔찌 등 부장품. 2부는 대형 무덤과 하니와(짐승 모형·토기·인간형상 등 무덤을 지키는 물품들)로 독특한 일본고분의 모습. 3부는 고분시대 후기의 유물로서 백제에서 전해진 굴식돌방무덤과 금은 장신구와 마구(馬具) 등 세련된 선진문화가 나타나는데, 이는 한반도와 일본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최근 `일본 속 한민족사 탐방단`이 일본을 다녀왔다. 초 중 고 교사 300명이 5박6일 간 시모노세키, 아스카, 나라, 교토 등에 남아 있는 조선통신사의 흔적을 밟아갔다. 나고야성(城)은 임진왜란의 진원지였고, 교토의 고류지에는 우리 국보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빼닮은 목조반가상(일본 국보1호)이 있다. 오사카의 한국인 학교 `백두학원`은 사물놀이 등 한국 전통문화를 가르친다.
포항시 구룡포읍에는 `일본인 거리`가 있고, 호미곶에는 `일본 탐사선 조난 추모비`와 일본인들이 살던 가옥이 있다. 양국 국민들이 역사의 흔적을 찾아 서로 오가는 것도 미래지향적 행보가 될 것이다. 교류와 소통은 두 나라 사이의 간격을 좁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