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은 아직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의 묘지를 참배하던 우리나라 정부의 엘리트 관료들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웅산 장군의 딸 수지는 미얀마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직 완전히 개표가 끝나지 않았지만 그가 이끄는 민주민족동맹(NLD)은 이번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미얀마에서 군부 독재가 완전히 청산되고 미얀마인들이 그토록 바라던 민주 정부는 순조롭게 수립할 것인가. 세계인들의 관심은 미얀마의 총선 결과와 수지여사에 집중되고 있다.
아웅산 수지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다. 그는 여성의 몸으로 머리에는 생화를 꽂고 비폭력 저항 운동으로 군부에 꾸준히 대항하였다. 미얀마 건국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그녀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은 정적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녀가 두 살 때 아버지는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딸의 머리에 난초 꽃을 꽃아 주었는데 벌써 그녀는 일흔이 되었다. 1988년 영국에서 귀국한 그녀는 15년 간 가택 연금을 당하는 등 고난의 세월 속에서도 그녀의 머리에는 생화가 꽂혀 있다. 이제 그녀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며 이미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였다. 외신은 그녀의 `꽃이 총을 이겼다`고 전하고 있다.
2차 대전 후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제 3세계에는 군부 쿠데타가 유행하였다. 신생국 정부 수립 과정의 군부 쿠데타에 의해 수립된 군사 정권이 대부분이고, 왕권과 군권, 이슬람 교권과 왕권이 교묘히 결합한 권위주의 통치행태도 아직 남아 있다. 북한과 같이 군부를 앞세운 수령의 `선군 정치`도 군부 통치의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이다. 이들 대부분 나라는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에도 불구하고 군부의 독재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비교 정치학에서는 문민우위가 아닌 군부 통치를 정치적 후진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후진국의 군사 독재의 청산 과정은 험하고도 힘들다. 그 과정에서는 민주화 운동 지도자들의 고문과 투옥,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오늘의 미얀마의 총선 승리과정에는 수지 여사 외에도 수많은 인사의 피와 땀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이미 1990년 미얀마 선거에서 야당은 승리하였지만 군부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 미얀마의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투옥되고 희생된 것은 과거의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동안의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청년 학생들의 희생, 용공 조작, 김대중의 납치 사건 등의 비극이 뒤따랐다. 민주주의는 수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다.
수지는 이번 선거를 통해 53년의 군부 독재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일부 언론은 미얀마는 선거 혁명을 통해 민주화의 길을 열어갈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미얀마의 민주화는 이제 그 출발점에 서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수지의 대화제의에는 응했지만 그들의 기득권을 쉽게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현재도 미얀마의 군부는 의석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동의 없이는 의석 2/3가 채워져도 사실상 헌법 개정이 불가능하다. 또한 미얀마에서는 남편이나 자녀가 외국 국적을 소지하면 대선 후보 자격이 박탈되는 규정도 살아 있다. 이 법의 개정 없이는 수지가 대통령이 될 수는 없는 셈이다.
우리가 미얀마 민주화 과정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얀마의 정치 현실은 울퉁불퉁한 활주로에 비행기가 내리려는 형국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권위주의의 청산 과정은 그렇게 순조롭지 않은 것이다. 미얀마 역시 민주적 헌법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 험난한 과정은 대부분 후진국 민주화 역정이 보여준 교훈이다. 미얀마의 민주화 과정을 우리가 예의 주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