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은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흔히 기다림이라는 의미로 `노란 손수건`을 떠올린다. 반대로 의도한 일이 낭패로 끝났을 때도 `말짱 황이다`라고도 한다. 북한 당국은 일찍이 자본주의적 `황색 바람`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는 `모기장 이론`을 발표하였다. 자본주의의 시원한 바람은 받아들이지만 자본주의의 독충인 황색 바람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는 궁여지책(窮餘之策)에서 나온 발상이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시장경제라는 바람은 이미 북한에 상륙하였다. 평양에만 10여개 넘는 종합시장이 있고 전국에 380개 넘는 시장이 개설되었다. 심지어 평양에는 소매시장뿐 아니라 건축 자재 등 도매시장까지 등장하였다. 주민들 중에는 국영공장을 빌려 제조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조합의 배를 빌려 개인 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다. 가내 수공업이 재미를 보고, 돈을 빌려 주는 금고업까지 성행하고 있다. 심지어 당 간부와 결탁하여 아파트 건설업에 뛰어든 사람까지 있다. 금융시장과 노동시장이 본격적으로 개설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북한 경제의 5대 특징을 소위 5M이라고 한다. 시장(market)이 돌아가니 돈(money)이 돌고, 자동차(motor)와 휴대 전화(mobile)가 보급되고, 중산층(middle class)이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상인들에게는 휴대전화가 장사의 필수품이 되고, 벌써 평양 인구의 50~60% 이상, 북한 주민 370만명이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고려 항공 택시`도 700여대 등장하고, 자동차 사업과 주유소와 충전소까지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음식점과 가라오케, 놀이시설, 양주 코너까지 번지고 있다. 시장경제가 부수적인 사업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경제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북한식 현상`이 되었다.
이러한 시장의 확산은 밝은 측면과 함께 부작용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식량 부족에 허덕이던 사람도 시장에만 가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에 식량 사정이 좋아진 것은 농민들이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하여 텃밭이나 소토지에 보다 열심히 농사를 지은 결과이다. 눈치 빠른 상인들은 지역간 물자 정보를 파악하여 엄청난 이득을 남긴 사람도 있다. 북한의 최저 월 생활비 6만원의 20배인 116만원을 버는 사람까지 있단다. 북한식 신흥 부자가 등장하여 자본주의적 빈부 격차가 생기고 있다. 북한의 권력자는 이를 기화로 이권과 뇌물을 챙기고, 정부도 시장의 자릿세를 받아 부족한 재정에 보태고 있다.
이러한 시장 경제는 북한주민들의 의식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 북한의`우리식 사회주의`의 `평등`보다는 `경쟁과 자유`라는 가치가 선호되고 있다.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이라는 공식적 규범 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비 공식적 이기적인 규범이 선호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직업에서도 당 일꾼 보다는 무역이나 외화 벌이 일꾼을 선호하고 있다. 북한의 IT 고급 인력은 외국에 파견되어 연봉 2만불 이상을 버는데 북한 해외 파견 근로자 평균 3천불 보다 월등히 많은 연봉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민들의 당과 조국에 대한 `운명 공동체 의식`은 희석될 수밖에 없다. 최근 북한의 당과 군부의 해외 근무 엘리트 20여명의 탈북 사태는 이와 무관치 않다.
평양 당국이 이러한 자본주의적 황색 바람을 애초부터 우려했지만 그 대세를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중국이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막을 수 없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북한식 계획 경제의 심각한 위기는 시장경제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장을 통해 걷어 들이는 각종 점포 임대세가 통제 경제의 체면을 살려주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김정은 수령이 당 70주년 기념식에서 `인민`을 위한 경제 정책을 재천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평양의 자본주의적 황색 바람의 풍향과 속도는 현재로서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