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그는 나날이 쇠퇴해가는 옆지기의 기억력 탓으로 업무가 더 가중되었다. 꼼꼼히 일정을 챙겨주고, 길 안내 임무를 맡기도 한다. 너무 의지하려는 옆지기 때문에 수시로 신열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명대로 살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는 손때 묻은 정을 미끼로 인정머리 없고 사무적인 경우도 있다. 몸이 천근만근 젖은 솜처럼 무거운 아침에도 단 한 치 양보와 오차 없이 모닝콜을 울려댄다. 일어나기 귀찮아 이불 속으로 파고들기라도 할까 봐 날짜와 시간까지 들먹이며 보챈다. 융통성이라곤 찾아 볼 수조차 없다. 유별난 여인네의 바가지 등살이 이보다 심할까.
출근 시 그를 제일 먼저 챙긴다. 곁에 없으면 손도 마음도 허전하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떨어지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의 역할은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중에서도 급한 상황에 부닥칠 때 돋보인다. 출근길에 애마가 고장 나서 긴급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다. 그가 저장해둔 정보로 직접 도움을 요청하니 위치 추적을 해도 되느냐고 묻는다. 출근을 서둘러야 하는 급한 상황에 얼른 동의했더니 발신 위치를 알아내고 손쉽게 찾아와 서비스해 준다. 초행길을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오는 서비스가 신기하다. 그가 옆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그물처럼 섬세한 정보망으로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아부하지 않는다.
고립무원의 산중이나 인적 끊긴 낯선 해안에서도 그를 곁에 두면 마음이 든든하다. 거리에 낙엽이 바스락거리고 스산한 바람이 불 때, 오봉산에 올라 금호강 낙조를 바라볼 때, 궂은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 내 시선은 자주 그에게 멈춘다. 주름지지 않은 감성 탓인지, 막연한 그리움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날 온종일 침묵하는 그를 보노라면 왠지 야속하다.
분신 같은 그에게 결점이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옆지기의 일상을 다 알고 있음에도 비밀을 보장할 수 없단다. 문명의 부산물인 그가 비밀을 폭로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야 없으리라. 하지만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감추고 싶은 이야기와 모든 통화 내용을 알 수 있다니 유감이다.
그뿐인가.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잦은 형식적인 언어를 남발한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은 식상하다. 간절함과 애절함이 사라져 버리고 빈 껍질 같은 언어들만 난무하는 시대이다. 출처가 묘연한 전자적 언어와 폭력적 언어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파괴하고 있다. `불금`이 뭔지 모르는 엄마를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무시하는 세상이다. `불금`은 불타는 금요일을 줄여서 하는 말이란다. 약정 위반으로 과도한 청구금액을 감당하지 못하고 빚쟁이로 몰리어 스스로 목숨을 담보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인기를 누리며 스마트하다는 그를 무작정 멀리할 노릇도 아니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살아 있는 생물체는 자기 방어와 안전에 대한 욕구가 있다. 인간은 더욱 그러하다.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필연적인 동거라 하더라도 심리적인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 나와 그 사이에도 보편적인 원리가 적용된다. 그와 서먹한 사이가 되더라도 내 일상에 지장이 없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싶다. 삶이 힘겹고 헛헛해도 잠시 그의 손을 뿌리치고 고독이 밀려오는 길목에 서 있겠다. 눈에 보이는 경계가 없고 가늠하기 애매한 동거라 할지라도 편리함을 빙자해 주객이 뒤바뀌는 바보가 되기는 싫으니까.
그가 부른다, 반가워서 확인을 누르니 대리운전 메시지다.
`쳇 오늘 누가 술 마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