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1월 11일`은 4년 4개월 간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이다.
독일이 영국에 항복했고, 그 날 오전 11시에 영국 전역은 축포를 쏘며 승전기념식을 연다. 영국의 국화(國花)는 장미지만 양귀비꽃은 영국인의 자부심이다. 양귀비열매는 아편 원료인데, 19세기 영국이 아편전쟁에서 두 번씩이나 중국 대륙을 이겼다. 그리고 제1차세계대전과 양귀비꽃은 특별한 일화를 남겼다.
1915년 봄 플란더스 들판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양측 진영은 참호속에 몸을 숨기며 대치했다. 잠시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갔을때, 참호 밖으로 목을 내밀고 들판을 바라보던 헬머 중위는 갓 피어난 양귀비꽃을 보고 그만 마음을 뺏겼다. 무심코 몸을 내밀어 꽃을 만져보는데, 독일 저격수가 그를 쏘았다. 그의 시신은 양귀비꽃이 만발한 들판에 묻혔고, 존 맥크래 중령은 “플란더스 들판에 양귀비꽃이 피었네/줄줄이 서 있는 십자가 사이로”로 시작돼 “우리는 영영 잠들지 못하리/플란더스 들판에 양귀비꽃이 자란다 해도”로 끝나는 시를 바쳤다. 이 시는 언론에 발표돼 국민을 감동시켰고, 한 교사는 종이꽃을 만들어 팔아 전쟁고아를 구호했는데, 이 운동은 불길같이 번져갔다. 영국인들은 다투어 꽃값을 기부했고, 여왕도 꽃을 사서 가슴에 달았다. 1914년에 시작된 제1차세계대전은 이렇게 감동적 모습으로 마무리됐다.
영국 총리실이 공식 페이스북에 `양귀비꽃을 단 총리의 사진`을 올렸는데, 그 꽃이 진짜가 아니라 `합성`한 포토샵이란 것이 들통났다. 캐머런 총리가 시진핑 중국 주석을 모셔 극진하게 대접을 하면서 투자유치를 한 일을 두고 “아편전쟁의 자존심을 돈과 바꿨다” 비난을 받는 와중이라, 네티즌들은 “총리가 아편꽃 살 돈이 없어서” “꽃도 그저 먹으려 한다”고 조롱했다. 총리실은 곧 진짜꽃을 단 사진으로 바꿨지만, 이래저래 스타일만 구겼다. 정치·외교는 참 어렵다.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