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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대표 부친 `해촌 김용주 선생` 포항 영흥초등학교 설립 어떻게

이창형기자
등록일 2015-10-30 02:01 게재일 2015-10-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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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회서 운영하다 폐교된 학교 교명·학동 인계받아<BR>  全 재산 절반 넘게 투입 <BR>지역 첫 사립국민학교 열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9일 포항을 방문, 자신의 부친인 해촌 김용주 선생이 설립한 영흥초등학교를 전격 방문함으로써 당시 이 학교 설립 과정이 주목받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학교 방문에서 “(아버지)사업이 불같이 일어나서 돈을 많이 받았는데, 그 돈으로 학교 건립과 독립군 자금도 많이 대고 해서 (살림이) 많이 어렵다는 것이었다”면서 어릴 때 부친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지난 8월 15일 발간된 부친의 평전 `강을 건너는 산`-(도서출판 청어, 이성춘·김현진 편저)을 아버지의 흉상 앞에 바치기도 했다.

이 평전에서 해촌 선생은 “1933년 포항읍 인구는 3만명이 넘어 도청소재지 대구에 버금가는 경북 제2의 도시였다. 인구와 읍 규모에 비해 읍내 거주 한국학동을 위한 교육기관은 미미했다. 공립보통학교 1교와 기독교회에서 운영하는 사립보통학교 1교 등 고작 2교에 불과했다”며 당시 사립 영흥국민학교를 설립하게 된 배경을 담담히 전하고 있다.

“첫 아이(장녀 김문희)도 무려 8대1의 경쟁을 뚫고 입학을 했다.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학교부족으로 제대로 취학을 못한 다른 어린이들을 보고 교육당국의 거짓정책에 분격했다”며 학교설립의 구체적인 동기를 밝히고 있다. 그런던 중 기독교회에서 운영하던 영흥보통학교가 폐교됐다. 교육당국이 신사참배, 일장기 게양 등을 강요하자 교회 측은 교계명에 위배되는 일이라며 버틴 것이다. 그러나 갖은 탄압이 계속되자 교회측은 자진해 학교를 폐교했다. 1933년 3월의 일이다.

해촌은 우선 가교사 하나를 마련했다. 설립허가까지는 막대한 적립금과 더불어 1년이상의 시일이 소요되기에 교회당 건물 안에서 운영하면 영흥국민학교의 교명과 허가를 인계받는 형식을 취하기로 교회측과 합의를 봤다. 구 영흥국민학교는 학교자체의 독립된 교사도 없이 단지 교회당을 이용해 평일엔 학교로 쓰고 주일이나 예배 시에는 예배당으로 써 왔다. 결국 해촌이 교회측으로부터 인계받은 것은 교명과 학동 뿐이었다. 해촌은 당시 “새로이 교사 등을 신축하고 보니 사실상 새로 설립한 학교였다. 당시 내가 여기에 투입한 금액은 재산의 절반을 넘었다”고 전한다.

이석수 전 경북도 정무부지사는 “지금까지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혜촌 선생을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또 교육자로, 정치인으로 높게 생각하는 것은 일제 치하에서 지역을 위해 모두 `최초의 일`을 벌인 선각자라는 배경이 뒤에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포항에 첫 사립 영흥초등학교를 설립한 것은 일제강점하에서도 교육 백년대계를 내다본 것이다”고 말했다.

/이창형기자 chlee@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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