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자격증 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종류도 다양하게 생소한 것들도 많다. 너나없이 써먹지 않아도 장롱 속에 눌러앉은 자격증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부모 자격증을 주는 곳은 없다. 만약 그런 학원이나 학교가 있어 자격증을 준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부모 되는 법을 배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운다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어른과 아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리라. 궁금증을 풀어 주는 국어사전처럼 부모 사전이라도 있다면 살아가기 편하겠지.
생각에 잠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도 모르게 무모한 행동을 하게 된 적이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 생각은 들어보지도 않고 윽박지르고 옴짝달싹을 못 하게 한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아이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부모가 되는 학교가 있다면 허둥대지 않았을 텐데. 갑자기 간절한 생각이 나를 흔든다.
가슴은 두방망이질은 한다. 입술도 떨린다. 이 마음을 전하지 않고는 숱한 밤을 지새우며 애를 태워야 할 것이다. 자식이지만 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용서를 구해야 그게 부모의 도리이리라. 그동안 내 감정에 치우쳐 소리를 질러댄 적이 많았다. 때론 부부 싸움 끝에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 또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성적을 무조건 올리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아이들이니까 개구쟁이 짓을 하느라 집안을 어질러 놓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매를 들었다. 나의 생활 방식에 맞추라고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았던가. 또 새로운 일을 접할 땐 서툰 건 당연한데 봐 주지 못하고 재촉했다. 혼자서 아빠 몫까지 다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자존심 때문에 본의 아니게 아이들을 괴롭혔다. 모두가 어쭙잖은 욕심 때문이었으니. 뒤돌아보니 후회스러운 일이 하나하나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세 식구가 식탁에 앉는다. 얼마 만인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지만, 함께 식탁에 앉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일요일 저녁 친구들과 어울려 마음껏 놀고 싶었을 텐데 선뜻 달려와 주니 고맙다. 들뜬 기분에 평소에 아끼던 양주 한 병을 꺼낸다. 조각 얼음 몇 개 컵에 넣고 술을 붓는다.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아이들은 의아한 눈빛이다. 술잔을 드는 순간까지도.
사랑하는 두 녀석 앞에 굳게 다문 입술을 연다. 우물 바닥에 깔린 크고 작은 자갈을 갈퀴로 끌어 올리듯.
“야들아, 엄마를 용서해 도고. 엄마가 자격 미달이라 그동안 너그들 마구잡이 대했던 것 말이다. 엄마 자격증을 주는 학교가 있었으면 제대로 공부해서 엄마 노릇을 잘 했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남들처럼 온전한 가정을 꾸리지 못한 거 까지도.”
눈물을 질근 거리며 용서를 구했다. 작은 아이는 엄마가 눈물까지 보이는 것에 마음이 짠했던지 고개를 푹 숙인다. 큰 아이가 입을 열었다.
“엄마, 뭐 새삼스럽게 그런 말씀을 해요. 내 주위에 친구들도 아빠 없이 사는 사람 많아요. 엄마는 성공한 사람 측에 들어요. 그래서 우리도 따라 하려고 노력중이고요. 남들은 아빠 엄마가 같이하는 일을 엄마는 혼자 다 해내셨잖아요. 덕분에 우린 이렇게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자랐습니다. 누가 뭐래도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어린 나이라 그때는 잘 몰랐는데 요즘 와서 엄마의 삶을 생각해 보면 대단하다 싶어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마음이 아프기도 해요. 이젠 저희가 힘이 될게요. 든든한 보호자가 될 테니 염려 마세요.”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시간도 없이 술잔을 부딪쳤다. 이젠 두 발 뻗고 잘 수 있겠다. 아이들이 어느새 어른이 된 걸 잊었다. 자식으로 인해 난 엄마 자격을 딴 셈이다. 아직 더 갈고 닦아야 하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