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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을 꿈꾸며

등록일 2015-10-16 02:01 게재일 2015-10-1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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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임 수필가
뉴질랜드는 겨울에도 나뭇잎이 풋풋하다. 간간이 비 뿌리고 바람 향기로운 겨울이 뉴질랜드에 있다.

아이들 뒤치다꺼리와 숨 쉴 틈조차 없던 직장 일을 송두리째 둘둘 말아 툭, 내던진 홀가분함이 어깨에 날개를 달았는가. 구름 위를 날던 열두 시간의 비행 내내 간지러움을 태운 듯 입술이 자꾸 헤실거렸다. 오클랜드 공항은 겨울이고 오월이었다. 오랜 세월 웅숭깊어진 나무들과 얄핏한 얼음에 싸인 듯한 대기 속으로 내리는 비가 부드러웠다. 지루한 장맛비도, 헐떡거리며 사람을 놀랬키는 소나기도 아니었다. 우주만물을 주관하는 어느 절대자가 물뿌리개로 생명을 키우듯 고루고루 조심스럽게 내렸다.

우리 일행은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길을 달려 로토루아로 갔다. 유황이 풍부한 폴리네시안 온천수는 까칠한 일상의 찌꺼기를 고요히 밀어내고 상쾌한 매끄러움을 몸속으로 돌돌 불러들였다. 우리는 아이처럼 신이 났다. 몰래 숨겨온 스무 병 남짓한 소주와 공항 면세점에서 산 발렌타인 현지에서 산 맥주를 마셔대기 시작했다. 고삐 풀린 자유가 계속되던 사흘째 밤, 술과 안주가 바닥났다.

뉴질랜드의 밤은 적막했다. 음식점은 일찍 문을 닫고 술집은 드물고 노래방도 없었다. 24시 편의점은커녕 일반 마트조차 저녁 8시가 되면 셔트를 내린다. 하루 일을 마친 사람들은 가정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조용하게 산다고 했다.

술과 안주를 구하러 낯선 도시, 인적 드문 밤거리를 헤매던 일행이 돌아왔다. 라면 두 봉지와 마른 멸치를 겨우 구했다. 라면을 먹을 일회용 젓가락을 3개 얻으려고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돈을 주고 샀다고 했다. 말이 다르니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느라 고생을 한 모양이다. 아시아 먼 나라에서 어렵게 찾아왔는데 일회용 젓가락 하나 서비스 하지 않다니. 그깟 몇 푼이나 한다고.

그러고 보니 사흘을 머무는 숙소 어디에도 일회용품이 없었다. 종이컵 칫솔 면도기 머리밴드 커피나 녹차티백은 물론 냉장고에는 물병이나 음료수 캔도 없었다. 종이에 싸인 비누와 작은 플라스틱 통 샴푸가 전부였다. 고개만 들면 펼쳐지는 울울창창한 숲을 숱하게 지니고도 나무를 원료로 하는 편리한 일회용품 사용에 이렇게 인색하다니. 풍성하게 소유만 했지 살아가는 편리를 찾을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 같았다.

여행가이드가 말했다. 뉴질랜드는 자연을 보존해 세세손손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노력한다. 환경을 오염시킬까 제조업체도 설립하지 않고 필요한 공산품은 수입해서 아껴 사용한다. 주변 바다 밑에 석유가 내장된 걸 알지만, 오염될 바다와 자연환경을 염려해 개발하지 않는다. 석유도 전량 수입해서 사용한다고.

얼마 전, 국제 보디페인팅 페스티벌 진행 보조요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스티로폼 도시락에 점심과 저녁 식사가 담겨 나왔다. 치킨과 음료도 일회 용기에 포장되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간식이나 식사를 마치면 필요가 끝난 물품들이 일회용 종이봉투에 가득 넘쳤다.

페스티벌 시상식이 진행되는 화려한 무대 주변으로 일회용품으로 포장된 음식을 먹거나 사용하는 관객이 3만 명이 넘었다. 일회용 폐기물로 가득 찬 일회용 가방들이 만 개는 만들어졌을 것이다. 엄청난 일회용품 소비요 폐기물의 엄청난 생산이다.

아름답게 보디페인팅(bodypainting) 했던 여러 나라 모델은 덧칠한 색채를 말끔히 지우고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뉴질랜드 맑은 숲에서 태어나 첨단기술과 과학으로 일회용 컵이나 젓가락, 도시락으로 변신해 모델을 빛나게 도와주었던 나무들은 어디로 갈까. 초원도 없고 숲은 드물고, 제조업체와 자동차가 많아 공기마저 탁한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무참히 버려졌으니 `나는 다시 밀림으로 돌아가지 못 하는구나` 탄식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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