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의 일흔세 번째 생신날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창밖 시월의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내리는 햇살은 투명했다. 나와 동서들은 무난히 상차림을 잘 끝내 가벼운 마음으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때 강둑길을 지나던 낯선 차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마당으로 들어온 차에서는 낯선 여인들이 내렸다. 커피 보따리며 케이크 상자를 든 그녀들의 옷차림이 어쩐지 예사롭지 않았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시아버님과 그녀들은 호들갑을 떨며 인사를 나누었다.
시아버님 친구 몇 분이 더 오시고, 거실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간다. 나는 어머님의 표정을 살폈다. 우려와 달리 크게 언짢아 보이지는 않는다. 큰어머님과 고모님도 덤덤하다. 남편은 일찌감치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시동생 두 명도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나와 동서들은 떨떠름한 기분이 되어 무심한 척 주방에서 얘기를 나누지만, 왠지 저쪽이 궁금하다. 그래도 고개를 들고 쳐다보기가 민망하다.
파티가 끝나고 커피를 잔에 부어 앉아 계신 어른들께 쭉 돌린다. 향긋한 커피 향이 온 집안 가득 풍긴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방으로 들어가 있던 남편이 갑자기 거실로 나오더니 화난 목소리로 여인들을 향해 이제 그만 가보라고 버럭 한마디 한다. 갑자기 찬물이 확 끼얹어진 듯 분위기는 어색하고도 냉랭하다. 평소 고지식하기로 소문난 남편이다. 그도 뭔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저녁이 되어 삼 형제 부부는 대구로 향했다. 차 안에서 돌아본 시댁은 정적이 감돌았다. 마을을 벗어나자 남편이 여기저기 전화를 하더니 정체불명의 불청객이 정 다방의 여인들 임을 확인한다. 통화하는 목소리에 화가 덜 식었음이 역력하다. 가족들이 모처럼 모인 집안 행사에 그것도 아이들도 있는 집에 갈 데 안 갈 데 구분 못 한다면서 안 좋은 소리를 퍼붓는다. 평소 같으면 말렸을 나도 묵묵히 앉아있다. 다음날 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경로회장인 시아버님의 생신을 축하해 주기 위해 단골 다방에 친구가 전화해서 이벤트를 부탁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해하라고 한다.
다음 해 시부모님 두 분은 예고도 없이 홀연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첫 명절이 되어 거실에 모여 앉았다. 시동생의 고향 친구들도 함께였다. 아직도 고향을 지키고 있는 그들은 남편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들에게 남편의 유연하지 못한 스타일은 배꼽 잡을 얘깃거리다. 그들은 술자리에서 그때 사건을 끄집어낸다. “그건 행님이 잘못했니더.”라며 하늘 같은 형님에게 충고한다.
그들의 관계를 불건전하게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을 다해 어르신들을 챙기는 다방 아가씨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관해 얘기한다. 그들의 말투는 익숙하지 않지만, 세상의 또 다른 지혜를 깨닫게 해 준다. 그들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 밤늦도록 얘기꽃을 피웠다. 천방지축이던 자신들 젊은 날의 치기와 예사롭지 않던 시부모님과의 추억담 한 구절씩을 읊으며 많이 웃고 울며 우리는 시부모님과 그날을 그리워했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문득 시동생 친구의 말이 떠올랐고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남편도 그랬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다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다 불건전하다는 생각을 굳게 깔고 있었던 것 같다. 시골에 남아 있는 할아버지들과 다방 아가씨들 사이에 새롭게 형성된 문화를 굴곡의 시선으로만 보려 했다. 남편은 왜 그렇게 화를 냈으며 난 그것에 동조했을까. 남편과 나는 어떤 가치의 잣대로 그리 경계를 치고 싶었던 것일까. 돌이켜보니 그날의 사건 이후 한동안 시아버님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았다. 섭섭하셨다는 거다. 우리 자식들이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는 것 이상으로 지켜야 할 더 중요한 그 무엇이 있었단 말인가.
시아버님은 생전에 무척 살가운 분이었다. 오늘따라 아버님이 무척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