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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로 가는 길

등록일 2015-10-02 02:01 게재일 2015-10-0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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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아세수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매서운 추위였다. 마당으로 나온 나는 무심코 올려다 본 까만 하늘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희고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보았다. 순간 그 자리에 멈추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였다. 저것이 무엇일까.

구멍에서 하얀 빛이 꿈처럼 쏟아져 내렸다. 마당은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주의 이름 모를 외계의 생명체가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주변의 모든 것이 숨죽이고 숙명처럼 빛을 받아내고 있었다. 나도 빛 속으로 들어갔다.

매서운 추위가 자신의 힘을 한껏 발휘하던 깊은 밤. 나뭇잎 하나 없는 앙상한 가지가 그 구멍에 살짝 걸쳐져 있지 않았다면 난 그것이 달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추위가 따뜻한 방으로 들어가라 내 등을 떠밀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달의 유혹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빛 속의 나는 이제 막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새끼였다. 처음 본 것을 어미라 여기 듯 저 나뭇가지만 잡으면 나는 달에 갈 수 있었다. 밤이 깊어가고 달이 커져가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가지가 내 속을 태웠다. 그렇게 환한 밤이 거짓말처럼 이야기가 되어 깊어갔다.

아침에 올려다 본 나무는 열세 살 계집아이가 올라가기에는 너무 높았다. 달로 가는 길을 만들었던 가지는 하늘에 닿아 있었다. 우리 집 마당에 처음부터 있었던 나무. 난 나무에 대해 알아야 했다. 달에 가려면 나무가 출발점이 되는 것이니까.

나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출발점은 조금씩 잊혀져갔다. 그러다 내가 어른이 된 후 우연히 가죽나무에 대해 알게 되면서 달로 가는 길을 찾던 유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대나무처럼 순을 먹는다 하여 죽(竹)나무라 불리는 나무가 있다. 그런데 이 죽나무와 너무나 흡사한 나무가 하나 더 있다. 생김새는 같은데 냄새가 지독하고 독성이 있어 그 순을 사람이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짜 죽나무라는 의미로 가죽나무라 불리게 된다. 쌍둥이처럼 닮은 것 중 쓸모없는 하나를 가죽나무라 이름 붙였으니 다른 하나를 그냥 죽나무라 부르기 심심했는지 진짜를 의미하는 참죽나무라 불렀다. 다른 한편에서는 가죽이 가짜 중을 의미하는 가승(假僧)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름의 유래야 어찌되었든 가죽나무는 가짜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가죽나무의 순을 따서 먹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가죽나무의 순은 사람이 먹을 수 없다 하였는데 어찌된 일일까.

어쩌다 이런 오해가 생겨났는지 모르겠지만 가죽나무라 불리는 나무가 사실은 참죽나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진짜를 가짜라 부르면서도 그 순을 따서 먹고 있다. 그럼 진짜 가죽나무는 무엇이라 부를까. 그것도 그냥 가죽나무다. 진짜도 가짜, 가짜도 가짜가 되어있다.

그래도 신기한 것이 사람들이 말로는 다 가짜라 하면서도 진짜를 은연중에 찾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겨울밤의 이야기가 꿈인지 현실인지 굳이 구별하지 않아도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는 것처럼.

살다 보면 종종 어느 것이 가죽나무인지 참죽나무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리고 내가 보는 나의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신이 서질 않을 때도 많다. 흑과 백을 구별하는 것이 모호하거나 아니 굳이 구별을 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그럴 때 난 눈을 감고 유년의 아름다웠던 겨울 저녁을 떠올린다. 맑은 달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던 진짜이면서 가짜라 불리는 나뭇가지를 잡아 본다. 그럼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는 그날 밤의 하얀 빛이 내 몸 구석구석 피가 되어 돌아다닌다. 항상 바로 눈앞의 현재를 살아야 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나에게 달로 가는 길을 만들어 주었던 가죽나무의 가지는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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