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일찍 유학생을 보내 서구 선진기술을 배웠는데, 등대 건축술도 이때 습득했다. 1900년대 초에 콘크리트, 철근, 철골, 벽돌을 이용해 등대를 지었다는 것은 최첨단 공법이었으니, 등대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선진 기법이 총동원된`종합건축예술`이었다. 그리고 등대는 무선 기지국 구실도 했는데, 등대지기가 되려면 무선사 자격증을 따야 했다.
서양에서는 그리스 신전을 본딴 등대가 당시 유행이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조랑말 형상의 제주도 등대, 거북선 모양의 한산도 등대, 젖병 모양의 기장읍 등대, 흰고래와 붉은고래 모양의 두 등대를 설치해서`그 사이로 가면 안전함`을 알려준 것이 바로 울산 정자항 등대다. 이처럼 등대는 그 지역의 특징과 상징성을 보여주는 건축예술품이었다.
인천 팔미도 등대는 유형문화재 40호인데, 포항 호미곶 등대는 39호이다. 1907년 일본 수산실업전문학원 실습선이 구만리 인근 해역에 조사차 나왔다가 3각파도를 만나 침몰한 것이 계기가 돼 등대건설사업이 시작됐고, 이듬해 완공했다. 프랑스人이 에펠탑을 모티브로 설계했고, 중국 기술자가 벽돌로 지었다. 팔미도 등대는 높이가 7.9m인데 호미곶등대는 26.4m나 되는 6층 구조이고, 각 층마다 대한제국의 상징인`오얏꽃`문양을 새겼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경북도는 동해안 일원에`등대 해양관광벨트`를 조성한다. 호미곶 등대박물관을 중심으로 빼어난 동해안의 절경을 이용한`등대투어`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위에 비치며/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가곡과 함께 아련한 추억을 만들 기회가 될 것이다.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