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쪽배를 타고 유럽으로 가려했으나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11시간 표류하다가 터키에 닿았다. 그는 거기서 의사를 포기하고 `난민 브로커 조직`에 들어갔고, 그리스로 가려는 난민들에게서 1인당 1천100 달러를 받았다. 이런 일은 당시 불법이므로 터키 경찰에게 적잖은 뇌물을 주었다. 마흐무드의 월 수입은 수천만원이다.
그의 이름은 인터폴 수배자 명단에 올랐다. 그러나 이제 체포되지 않게 되었다. 3살짜리 소년의 죽음으로 `난민보트 운영과 브로커업`은 더 이상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일과 미국은 경제가 빵빵하니 난민을 대거 받을 수 있고, 난민의 입국을 `불법`으로 취급하던 유럽의 나라들도 체면상 `죄인 취급`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그리스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은 다만 `입국 난민의 수`를 제한할 뿐이다.
반군이 점령한 아르무크시를 정부군이 봉쇄하면서 이 도시에서는 수백 명이 굶어죽고, 병들어 죽었는데, 그 도시 길거리에서 피아노 치고 노래 부르며 희망을 전하던 청년이 있었다. 알아흐마드(27)는 어린이들과 함께 `형제여, 이 도시는 당신을 그리워합니다`를 노래하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려 세계에 알렸는데, `음악은 이슬람율법 위반`이라며 수니파 반군이 피아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질러버렸다.
“내 생일날 친구 이상의 친구를 잃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 그는 결국 탈출을 결심했고, 의사 출신의 브로커 마흐무드의 도움을 받아 터키로 갔고, 거기서 작은 보트를 타고 그리스의 한 섬에 정착했다. 그의 소망은 “피아노를 주는 사람이 있다면, 베를린 길거리에서 연주하고 싶다”는 것. 언론을 통해 유명인이 된 그를 도울 독일인은 금방 나올 터. 어떤 경우에도 절망은 없다고 노래한 그는 바로 `희망의 빛을 쏘는 등대`가 됐다.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