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힘도 넓은 교류와 포용력에서 나왔다. 고려 개성의 벽란도는 송나라, 베트남, 태국, 요나라, 여진국, 일본 등지를 오가는 국제항만이었다. 정치에는 막대한 돈이 드는데, 고려 왕건은 광범한 국제교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고, 그것이 정치권력으로 이어졌으며, 그의 오지랍 넓은 포용력은 삼국을 통합하는 구심체가 되었다. KOREA란 이름도 이때 `고려`에서 나왔다. 자유연애를 묘사한 고려가요 `쌍화점`의 주인은 회회아비(아라비아 회교도)였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번영했던 국가가 당나라인데, 외국인을 등용하는 과거제도 `빈공과`가 있었다. 고려는 송나라 학자 `쌍기`를 `인재 선발 기관장`으로 임명해서 국내외적으로 인재를 모았는데, 이때 요직을 맡은 중국인이 40명 넘었고 몽골, 아랍인도 국정에 참여했으며, 귀화한 일반 외국인 수는 `고려 전체 인구의 8.5%`나 되었다. 이와같은 개방과 포용력은 고려를 `명품국가`로 만들었으니, 고려청자·팔만대장경·최초의 금속활자·고려 한지·나전칠기·고려불화(佛畵) 등이 그 물증이다.
오늘날 개방과 포용으로 번영하는 나라가 독일과 싱가포르이다. 독일은 히틀러의 인종차별정책에 교훈을 얻어 `다양성 교육`에 집중했고, 시리아 난민 수용에도 가장 적극적이다. GNP 5만3604달러인 싱가포르는 9년 연속 `기업하기 좋은 나라 1위`로 뽑혔다. 우리나라는 10년째 GNP 2만달러대에 묶여 있는데, 악성 이기주의와 정치권의 발목잡기와 편가르기가 `족쇄`를 채웠기 때문이다. `개방과 관용정신`만이 족쇄를 푸는 열쇠다.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