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붓한 산길이 마음을 잡는다. 가을볕이 설익었는데도 구절초, 들국화가 한창이다. 봄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이 가을꽃의 매력이다. 눈길 닿는 곳마다 자잘한 꽃들이 한껏 풍만해지려고 몸을 부풀리는 중이다. 이른 시간이라 길을 안내하는 이슬 맺힌 풀들의 모습이 더 청초하다.
다산 초당 가는 길. 그분이 걸어가신 유배 길을 따라 걷는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걷던 길이라 생각하니 애달픈 마음이 먼저 길을 나선다. 불혹의 나이에 유배라는 이름으로 산길을 오르며 그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풀꽃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모두 그분의 눈길이 스쳐 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길섶의 모든 풀이 예사롭지 않다.
귀한 인연은 따로 있는 것일까. 귀양을 간 다산은 주막에 들러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고 한스러워 한숨만 쉬고 있었다. 낙망하고 있는 그분이 범상해보이지 않았던지 주막집 여주인은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기르셔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흘려듣고 말수도 있었을 한갓 늙은 주모의 말이 다산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던가. 그는 주막의 방 한 칸을 얻어 사의재(四宜齋)라 이름 하고, 후학을 가르치며 집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니 귀하디귀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많이 배우고 잘 난 사람만 좋은 스승이겠는가. 적재적소에서 만난 사람이 가장 좋은 인연이고,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산이 걸어 오르던 산길이다. 드러난 뿌리들이 밟히고 밟혀 반질반질 윤이 난다. 땅 위로 솟구친 나무뿌리가 세월을 엮어 만든 아치가 있다. 이곳을 다녀간 한 시인이 `뿌리의 길`이라 이름 붙이고 시를 지었다. 다산은 모든 길의 뿌리였다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나이도 더 된 것 같은 뿌리를 어루만져 본다.
초가로 지어진 다산초당이 허물어지고 없다. 대신 그곳에 기와를 올린 건물이 우뚝하니 서 있다. 소박하고 정갈한 초당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아니어서 좀 실망스럽다. 다만 작은 연못에 돌을 쌓아 만든 아담한 연지석가산이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린다.
일행이 걸음을 재촉한다. 다산이 차를 배우러 수없이 걸었던 백련사 가는 길을 따라 밟는다. 도중에 `해월루`가 있다. 사방이 훤하게 트였고, 멀리 강진만이 내려다보인다. `바다 위에 뜬 달`이라는 뜻으로 지었다니 그 이름에 걸맞게 수려하다. 정말이지 팔베개하고 누우면 시 한 수가 절로 읊어 질 것만 같은 풍광이다. 다산의 주옥같은 시들 중 다수가 이곳에서 탄생했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혜장선사와 자주 만나 담소를 나누고 우정을 쌓던 곳도 바로 여기다.
이른 아침이다. 수확한 차 중에서도 가장 향이 좋고 으뜸인 우전차를 들고 백련사를 나선 혜장과 따뜻한 물을 준비해 초당을 나선 다산이 해월루에서 만난다. 온 산에 가을이 깃들고 풀벌레소리도 요란한데 서로 반가이 마주하여 안부를 확인한다. 은은하게 우러나는 차향에 마음을 담아 주거니 받거니 시 한 수가 뚝딱이다. 찻물이 떨어지고 햇발이 성글어 질 때까지 지칠 줄 모르는 담소가 이어진다. 해가 서산에 걸릴 즈음에야 내일을 기약하며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서로 돌아선다.
현대인은 빨리 빨리라는 말에 길들어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며 산다. 성급한 인스턴트에 익숙해질 후대의 자손들에게 차를 덖고 말리고 향을 우리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르쳐주기 위해 다산은 그리도 열심히 공부했던가. 차를 만들고 우려내는 일은 짙은 향과 더불어 상대방을 오래 내 몸에 간직하고 기억할 시간을 만드는 작업이다. 문득 그런 사람이 내게 몇이나 되나 짚어보는데 생각이 진전되지 않는다. 가슴에 돌멩이 하나가 얹힌다.
나는 누군가의 뿌리가 되어준 시간이 얼마나 있었던가. 살아오며 깊은 향이 나는 사람을 소홀히 하여 잃은 적은 없었는지, 또 내가 누군가의 향 짙은 차이기를 무심결에 놓쳐버린 적은 없었는지.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을 거쳐 다시 뿌리 길을 되짚어 돌아오는 동안에 기억을 더듬으며 생각이 많다. 어느새 가을볕이 제법 이울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