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겉껍질이 벗겨질까 두려워하고, 사람은 속마음을 다칠까 두려워한다”란 중국속담도 여기서 생겼다. 공자는 “국가경제, 국방, 신뢰, 이 셋 중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이 신뢰”라 가르쳤지만, 毛는 문화대혁명 당시 공자를 비판하면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 그 결과 중국의 발전을 30년 이상 발목잡았고, 그 거대한 대륙이 작은 섬나라 일본에 먹히는 비운의 제국이 되기도 했었다. 나라가 불신받으면 제대로 설 수 없다(不信不立)란 말은 영원한 진리다.
의심 많고 시기심 가득한 선조(宣祖)는 툭하면 `선위파동`을 일으켰다. “임금자리를 내려놓겠다”선언해놓고는 “어떤 놈이 찬성하나”하고 살핀다. 대놓고 동조는 안 해도 `적극 반대하지 않는 자`도 찍힌다. 이순신 장군도 그런 대상이 됐고, 명량대첩 후 전사함으로써 `전쟁후의 더러운 꼴`을 피할 수 있었다. 역사학자들은 선조를 조선조의 대표적 암군(暗君)으로 꼽는다. 임진왜란도 불신이 불러온 재앙이었다. 불신으로 가득한 나라는 허약해지기 마련이다.
1949년 4월 오제도 검사의 제안으로 `보도연맹`이 만들어졌다. 좌익활동을 한 사람이라도 이 연맹에 가입해 재교육받으면 보호하고 선도하겠다는 취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믿고 가입했다. 그러나 다음해 6·25가 터지자,“이런 자들이 북한에 동조할 것”이라 의심해서 상당수의 연맹원들을 죽였다. 최근 대법원은 포항 유족 143명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유족의 손을 들어주었다. `불신의 골`을 메우는 일이라 다행스럽다.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