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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길목 포항시에 안중근 기념관을

등록일 2015-08-13 02:01 게재일 2015-08-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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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견<br /><br />한국전력기술 상임감사
▲ 김순견 한국전력기술 상임감사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독도를 생각하면 복장부터 터진다. 멀쩡한 남의 나라 땅을 터무니없이 저희 것이라 우기는 심보 고약한 이웃 나라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지정학적으로 일본 열도가 침몰하지 않는 한 이웃일 수밖에 없으며 독도에 대한 도발은 계속될 조짐이다.

사실 일본이 동북아시아의 화근이 된 것은 소수 제국주의적 생각을 가진 지도자에 의해서였다. 임진전쟁의 도발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랬고, 한일병탄의 주범 이토 히로부미가 그러더니, 이제 아베 신조가 그 바통을 이어받은 듯 분탕질이다.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척살했다. 세계가 놀란 쾌거였고, 중국의 지도자와 지식인들은`4억 인구가 해내지 못한 일을 2천만 조선의 한 사람이 해냈구나!` `중국은 4천년간 다른 이를 위해 죽은 사람이 없으니 한국에 견줄 수 없는 것이 비통하다.`는 찬사와 자성의 목소리를 냈고, 위안스카이는 `몸은 한국에 있어도 만방에 이름을 떨쳤오. 살아서는 백 살이 없는데 죽어 천 년을 가오리다` 는 만장을 남겼다.

그의 의거가 후세의 사표가 되는 것은 현장에서 도주 의사 없이, `우레 꼬레아` 러시아어로 `대한민국 만세`를 당당히 외쳤으며 아울러 법정에서 보여준 의기 때문이다.

안 의사는 부당한 재판에 대한 항거와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로 항소를 하지 않고 당당히 죽음을 맞았다. 비록 일본의 침략을 제어하지는 못하였으나 대한제국과 중국인의 가슴에 그가 남긴 불굴의 의지는 항전의 불씨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옥중에서 남긴 `동양평화론`은 미완이기는 하지만 오늘 우리가 깊이 새겨 새롭게 써 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중국 시진핑 정부는 하얼빈역 의거 현장에 표지석을 세워 달라는 우리의 요청에 쾌히 응했다. 역 귀빈실을 개조하여 2014년 1월 19일 안중근기념관으로 개관하는 통큰 화답을 보인 바 있다. 2018년 새 역사에도 안중근기념관이 들어설 것임을 약속했다. 이와 같은 중국 정부의 호의는 단순한 추모나 우의가 아니라 일본 아베 정권의 망동에 대한 경고이자 중국 인민의 각성을 촉구하는 표시이다.

안중근 의사는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 아래에서 출생했고,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에서 자랐다. 북한도 안중근을 추모하기는 하지만 오직 이토 히로부미 척살에만 중점을 둘뿐 그의 인간존중이나 평화사상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효창공원에 안중근 의사 가묘가 있고, 서울 남산에 안중근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특정한 행사 때만 잠시 주목되는 정도여서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독도는 행정상으로는 경상북도 울릉군 소속이지만 정치구역으로는 포항시와 묶여 있다. 때마침 대흥동의 구 포항역사가 신포항역 개역과 함께 폐쇄되었다. 구 포항역사를 안중근 의거의 하얼빈 역사로 개조하여 애국 시민과 함께하는 안중근 기념관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안중근의 정신은 오직 `항일`과 `척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동양평화론`이 정수이며, 동양의 평화를 위해 감행한 의거이기에 한국과 중국뿐 아니라 일본의 많은 양심적 지식인들이 오늘까지 여전히 추앙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포항시는 독도로 향하는 길목이 아닌가. 그곳에 안중근 기념관을 세워 그의 정신을 되새긴다면 독도를 드나드는 모든 이에게 독도수호가 세계 평화의 상징임을 아로새길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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