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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만들기

이상형(철학박사)
등록일 2015-08-04 02:01 게재일 2015-08-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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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무더운 날이다. 폭염경보, 폭염특보, 폭염주의보라는 문구가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 `참 덥네`라며 넘길 수 있는 것도 경보, 주의보라는 말에 더 움추러드는 기분이다. 더위를 피한다고 몸부림치다가 아이들과 계곡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역시 더위는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미 계곡은 더위에 지친 많은 분들이 모여 계셨다. 부대끼다 보면 없던 일도 생기나보다. 폭염은 갈등과 충돌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윤리를 배우는 이유는 남을 배려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혼자살 수 없는 동물이고 공동체는 이미 우리 인간 삶의 조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공동체라는 말에 갈등과 충돌은 필연적이기에 윤리 또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가 간단하지 않은 것이 왜 나만 배려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어느 예능프로에서도 자주 외치던 `나만 아니면 돼!`라는 문구에 쉽게 동의하는 나를 볼 수 있다. 윤리를 지키면 손해일 뿐이며, 최소한 법을 어기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나의 이익을 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가로등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있다. 만약 우리 집 골목이 어두워 가로등을 건설하고 싶다면 첫째 방법은 내가 돈을 내고 내 이웃들이 돈을 내고 해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내가 돈을 내고 남들은 돈을 내지 않으며, 세 번째 방법은 내가 내지 않고 남들 모두가 돈을 내며, 네 번째는 나도 내지 않고 남들도 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몇 번째 방법을 선택하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세 번째 방법을 가장 선호할지도 모른다. 나는 돈을 내지 않지만 가로등은 만들어지니 말이다. 이것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남들도 나와 같은 정도로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만약 남들도 모두 세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면 결국 최종적으로 네 번째 방법이 선택되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첫째 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나부터 먼저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함께 살고 함께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공동운명체인 것이다.

/이상형(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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