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심했던 것일까. 영주는 여러 번 다녀갔지만 무섬마을은 처음이다. 낙동강 지류가 산에 막혀 떠 있는 섬, 수도리의 우리말 이름이다. 한눈에 들어오는 고택들의 오래된 지붕이 가지런한 마을, 외나무다리가 350년 시간을 간직한 채 휘돌아나가는 물 위에 떠있다.
책보 메고 건너던 아이가 새신랑이 되어 장가를 가면서도, 세상 떠나는 날은 상여를 타고도 건넜다는 다리. 통나무를 반으로 갈라서 받쳐놓은 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사람은 어쩌면 더 쉽게 사랑하게도 될 것 같다. 마주 오다 뒷걸음질 치는 아이를 가볍게 안으며 비켜 건넜다. 오늘 같은 날이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강바닥으로 샌들 신은 발을 사뿐히 내려서서 비켜줄 수도 있겠다.
점심은 미리 검색해둔 `무섬 골동반`을 먹었다. 향토음식 사업장으로 지원되고 있었다. 댓돌 아래 가지런히 정돈된 검정 고무신 두 켤레가 마치 장난감 같다. 멋 부리지 않은 툇마루가 소박하고 정갈하다. 그 위로 소나기에 젖은 발을 덥석 올리지 못하는 길손에게 잘 마른 수건을 내밀 때 벌써 음식 맛을 예상했던 것 같다. 다른 자리로 음식을 나르면서도, 먹고 있는 손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높은 문지방을 넘어 마루를 돌아서 가는 배려가 느껴진다. 옆자리 손님이 먹고 간 자리도 소리하나 없이 어느새 말끔하게 치워져 있다. 마루에 걸터앉아 비오는 마당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마을 어귀에 정자가 있다. 비를 긋는 것도 좋지만 몇 시간 째 혼자서 운전하는 동행이 잠시라도 눈을 붙여주었으면 내 마음이 더 편할 것 같다. 외나무다리에서 노는 손자들을 기다리는 노부부가 쉬는 한편에서 오목을 두었다. 차창 가득 소나기에 후드득 떨어져 누운 회화나무 꽃잎을 쓸어내고 출발했다. 두고 온 마음 한 자락은, 십리를 돌아나가는 푸른 강물 위에서 반짝이며 흐를 것이다.
/윤은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