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혼자지만 더러는 뒷자리에 예쁜 아가씨를 태우고 놀며 쉬며 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림 같은 풍경에 이끌려 세월을 되돌려봅니다.
시골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타는 자전거를 나는 타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나 되었지만 겁이 많아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5리가 넘는 길을 걸어 다니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옆집 봉수 자전거 뒷자리에 타게 되었습니다. 걸어 다니는 내가 안쓰러워 봉수어머니가 생각해 내신 거였지요. “봉수야, 승아는 체구가 작아서 태워 다녀도 되겠다. 인정머리 없이 혼자 먼저 달아나지 말고 뒷자리에 태워줘라.”
나는 겁나고 부끄러워 싫었지만 아침잠을 더 잘 수 있겠다는 생각에 못 이기는 척 뒷자리에 올라앉았습니다. 그러나 생각처럼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엉덩이도 아프고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땐 곧 떨어질 것 같아 좌불안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남학생의 허리를 끌어안을 수도 없어 옷자락만 겨우 잡고 있자니 불안했습니다. 첫날은 천천히 가더니 날이 갈수록 어찌나 속도를 내는지. 할 수 없이 봉수 허리를 힘껏 끌어안았습니다. 무서움을 이기지 못한 부끄러움은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학교에 도착할 때면 봉수는 땀을 비 오듯 쏟았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다음부터는 가방만 싣고 나는 걸어가겠다고 했더니 봉수가 사색이 되어 손사래를 쳤습니다.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자전거 타는 실력을 얕보는 거냐며 버럭 화를 냈습니다.
“이 바보야, 천천히 가면 힘도 덜 들고 나도 무섭지 않을 텐데 왜 그렇게 쌩쌩 달리냐.” 볼멘소리를 하며 달려드니 봉수도 지지 않았습니다.
“네가 자전거를 탈 줄 몰라서 그래. 빨리 가는 게 훨씬 쉽단 말이야.”
추우나 더우나 봉수 자전거 뒤에 타고 다니며 호사를 누렸습니다. 아쉽게도 봉수는 6학년이 되자 전학을 갔습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한데다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남달랐던 봉수 부모님께서 중학생이 되기 전에 도시로 보낸 것이지요. 떠나던 날 그믐밤같이 캄캄한 봉수의 표정을 보고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쉬운 건 내 쪽인데 봉수가 왜 저럴까 싶었지요. 의문을 풀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었으니까요. 봉수를 다시 만난 건 40여 년이 지나 어느 날 동창회였습니다. 세월은 봉수와 나를 어린 시절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로 바꿔 놓았습니다. 그럼에도 옛날 모습 그대로라며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스러운 거짓말로 서로 위로했습니다.
“승아야! 나는 세월을 되돌릴 수 있다면 초등학교 5학년으로 가고 싶다. 아침마다 너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달리는 그 기분이 어땠는 줄 아니.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내 허리를 어찌나 꽉 잡던지 신이 나서 자전거 바퀴가 저절로 굴러가는 것 같았어. 그런데 넌 여자아이가 왜 그리 눈치가 없냐.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없는데 넌 무섭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없는 아이 같았거든. 내 마음을 몰라 주어 섭섭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속마음을 알아차릴까 봐 두렵기도 했어.
“이 나쁜 녀석! 겨우 옷자락만 잡고 앉아 있는데 빨리 달린다고 꼭 잡으라는 바람에 네 허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잖아. 그걸 노렸구나. 늑대 같으니라고. 그때 네 흑심을 알았다면 절대로 타지 않았겠지. 그런데 니네 어머니가 태워 주라고 하셨을 땐 투덜거리며 싫어했잖아.”
“선뜻 대답하면 속마음을 들킬 것 같아 싫은 척한 거지. 사실 지금까지 우리 엄마가 그때만큼 내 마음을 잘 알아준 적이 없었다는 것 아니냐.” 봉수와 나는 초등학생이 되어 실컷 웃었습니다. 아마 봉수가 조숙했던가 봅니다. 나이가 두 살이나 많았거든요. 고운 추억을 접어 가슴 깊숙한 곳에 넣고 강을 따라 걷습니다. 쨍쨍한 햇살이 강물 위에 내려앉습니다. 눈이 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