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과 관련된 진한 추억이 있다. 고등학생 시절 일 년여 동안 자취 생활을 했다. 한 번씩 시골집에 다녀오면 쌀 한 포대와 얼마간의 반찬을 가져왔다. 어느 겨울날 한 번은 친구 여럿이 몰려오는 바람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한꺼번에 쌀과 반찬을 축내고 간 까닭에 시골 다녀오기 전에 바닥이 났다. 주머니도 비어서 하는 수없이 쌀은 주인집에 사정해 빌렸으나 반찬까지 빌릴 수는 없었다. 며칠을 간장만 가지고 밥을 먹었다. 그때 간장에 비벼 먹은 밥맛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엔 그런대로 먹을 만했지만, 나중에는 짠맛에다 쓴맛 덩어리 밥을 찬물 도움으로 넘겨야 했다. 간장이 소금으로 만들어졌으니 짠 건 당연하지만, 연탄불 피우느라 흘린 눈물까지 보태어졌으니 짠 정도가 아니라 소태맛이었다. 그래도 탈나지 않았던 건 그때 간장이 천일염으로 담은 자연식품 덕이 아니었던가 싶다.
인류 최초의 맛인 소금의 짠맛에다 단맛, 매운맛에 향료와 화학조미료가 첨가되면 묘한 감칠맛이 난다. 현대 과학의 산물인 이른바 `제2의 맛`이라는 조미료 맛이 우리 입맛을 점령했다. 천연 양념으로 맛을 낸 음식을 즐기던 우리가 `제2의 맛`에 감염되어 그 대가를 값비싸게 치르고 있다. 만연하고 있는 각종 암이나 성인병이 화학조미료가 내는 감칠맛의 비싼 대가라는 말이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수년 전에 `제3의 맛`을 예고했다. 제3의 맛은 식품 그 자체가 손맛과 숙성의 시간을 통해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맛이다. 발효식품이 그것이다. 이미 우리 조상이 오래전부터 즐기던 맛을 서양의 미래학자가 새삼스럽게 주장한 것이다. 발효 시품은 우리의 된장과 김치가 기본이고 각종 젓갈류에다 식초가 있고 전통 술이 있다.
거의 반천 년 전에 조선의 선비 김유(綏)가 쓴 `수운잡방(需雲雜方)`이라는 조리서는 한식의 사전이 되었고, 그로부터 백여 년 뒤에 장 씨 부인이 한글로 쓴 `음식디미방`은 한식의 `레시피 (recipe)`로 다시 태어났다. 한류의 인기에 더해져 한식이 소스 맛에 찌든 서양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니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다행히 우리 부부가 수년 전부터 발효식품을 담가 온 것이 헛된 일은 아닌 듯싶다.
해마다 춘삼월이 오면 매화가 만발한다. 봄바람이 매화 향기를 실어 나르니 꿀벌이 생명 잔치를 벌인다. 꽃은 머지않아 열매를 맺고 비바람과 구름을 벗하며 온전한 매실로 자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굵어지는 올몽졸몽한 모습이 농부에게는 꽃보다 당신이다. 하지(夏至)가 가까워지면 열매는 황금빛을 띠면서 그윽한 향기를 낸다. 이때쯤 농부는 한 알 한 알 거두어들이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물맛 좋은 지하수를 길어와 매실 식초를 담근다. 숨 쉬는 옹기에 삼사 년 동안 잘 숙성시키면 비로소 제3의 맛을 지닌 매실 식초가 탄생한다. 옹기 속에서 익어가는 식초가 여러 사람의 입맛을 돋우고 건강을 지켜 주리라 생각하면 그동안 흘린 땀방울이 잘 익은 매실처럼 커지는 보람을 느낀다. 자연 본래의 맛은 살아 있기에 숙성이라는 시간을 타고 맛깔스러운 맛으로 진화를 거듭한다. 간장이나 식초를 오래 숙성시키면 살아있는 효소가 스스로 진화해서 보약 같은 귀한 식품이 된다고 한다.
`맛`이라는 말은 참으로 오묘한 데가 있는 말이다. 바다처럼 넓고 깊은가 하면 새털처럼 가볍기도 하다. 우리네 전통 음식의 참맛은 깊고 은근함이 가없어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음식 맛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맛처럼 깊은 맛은 세월을 통해 오감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맛이다.
한마디로 멋있는 맛은 숙성이라는 이름으로 진화한 맛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