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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을 담그는 까닭

등록일 2015-07-17 02:01 게재일 2015-07-1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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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은주 수필가 비채 인성교육센터 원장
식사 초대를 받았다. 일 년 전에 진 빚을 갚겠다고 하셨다. 막상 당일이 되니 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망설여졌다. 빚이라니!, 내가 그분께 빚 받을 게 있었던가.

여러 해 전인가 보다. 지인의 소개로 그분과 인연이 닿았다. 어느 모임에서 내가 만든 된장이 도마 위에 올랐는데 지인의 맛있다는 칭찬에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때마침 그해 우리 집 된장이 맛있어져서 혼자 먹기도 아깝고 자랑도 하고 싶어, 된장과 간장을 보내 드린 적이 있었다. 며칠 뒤 “도시처녀가 시골에 전학 와서 처음 맛보는 시골 맛에 얼굴이 붉어지더라.” 라는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인연이 벌써 여러 해, 어느 해는 된장이 떨어졌는데 언제 줄 거냐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비싼 것도 아니고 귀한 것도 아닌 것을, 늘 빚이라 하며 이자까지 쳐서 맛있는 음식을 사 주시곤 한다.

주말주택을 하면서 이웃에 계신 할머니께서 맛보라며 된장 간장을 조금 나누어 주셨는데 첫맛에 마음을 홀딱 빼앗겨 버렸다. 그날 이후 밥 먹을 때마다 생각이 나서 할머니를 졸라 된장 담그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특별한 비법은 없으며 공기가 좋고 물맛이 좋고 햇빛이 좋으면 좋은 된장이 된다고 하셨다. 더 추가한다면 정성과 손맛이라 하셨다.

큰 항아리를 씻어 말려놓았다. 짚에다 불을 붙여 항아리를 소독하고 물을 부었다. 일 년 동안 간수를 뺀 소금을 넣고 큰 주걱으로 휘휘 저으면서 소금을 녹인다. 팔이 아프도록 젓고 나서 달걀을 넣어 농도를 맞추고 메주 한 말을 망 두 개에다 나누어 넣었다. 뒷밭에서 나뭇가지를 꺾어 메주를 누르고 대추 몇 알과 붉은 고추 몇 개를 넣고 마지막으로 숯을 띄우고 한지로 입구를 밀봉하여 항아리 뚜껑을 덮었다. 의식을 치르듯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올해도 맛있는 된장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소서.`

두 달이 지나 된장과 간장을 분리하는 날, 새끼손가락으로 간장을 찍어 먹었는데 그 맛이 달콤한 꿀맛 같기도 하면서 우물 속처럼 깊었다. 오랜 세월 주부로 살아오면서 아직 간장 맛이나 된장 맛에 매력을 느껴 보지 못한 터였는데 이 오묘한 맛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으랴.

맛있는 간장을 혼자만 먹기 아까워 온 동네방네 자랑을 했다. 어떤 지인은 가소롭게 보는 이도 있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손으로 만든 된장 간장 맛이 이렇듯 맛있는데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맛있는 간장을 혼자만 먹기 아까워서 여러 지인과 나누어 먹었고 또 먹은 이들이 맛있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할 때 난 세상의 부자가 부럽지 않았다.

내가 무엇으로 부자가 될 수 있겠는가. 세상에는 부자들이 많다. 난 공무원의 아내로 살아온 지 이미 오래다. 경제적으로 부자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나는 늘 부자였다.

어릴 적에는 가난이 싫었다. 돈이 없다는 것이 창피해서 가난한 내색은 절대 하지 않았다. 가끔 심부름으로 누런 봉투에 쌀을 사왔던 기억. 넉넉한 것이라곤 딸이 많다는 것뿐이었다. 엄마는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쌀독에 쌀을 먼저 들여놓고 다음에는 연탄 100장을 들여놓는다. 그런 날이면 배가 부르고 부자 부럽지 않다고 하셨다. 어린 나이라 그때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마흔을 넘기면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엄마를 닮아 가고 있었다.

김치를 담아도 10포기, 총각김치 8단, 열무김치, 파김치를 넉넉하게 담는다. 매년 제철이 되면 마늘지, 깻잎지, 오이지, 마늘장아찌, 다시마지 등 저장 음식들도 담는다. 누가 맛있다고만 하면 언제든지 한 그릇 퍼 줄 수 있는 여유가 좋다. 누가 찾아와도 빈손으로 보내지 않게 무엇이든 퍼 주어야 마음이 편안하다. 어떤 이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라고도 하고 친척들은 퍼주기 좋아하고 아낄 줄 모르는 성격 때문이라고도 한다. 누가 뭐래도 내가 좋으면 그만 아닌가. 남을 위해서가 아니고 나를 위한 일이다. 내가 부자가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나는 늘 부자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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