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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가르기

윤은현(수필가)
등록일 2015-06-22 02:01 게재일 2015-06-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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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영화보기 모임을 만들었다. 독서회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하나쯤은 늘 소속되어 살고 있지만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인쇄술이 보급되고 오랫동안 그 가치를 누리고, 인류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던 책은 이제 그 위상을 다른 매체들과 나누고 있다. 지금이라고 책이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어렵게 구해 읽던 만큼의 오롯한 감동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을 고백한다.

몇 번을 보아도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이는 일이 놀랍다. 함께 보는 이가 누구인가도 상관된다. 지나간 영화를 혼자서 다시 보기는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같이 보는 일은 기대가 되고 그의 반응 또한 궁금해진다. 모두가 같은 장면을 보는데도 관점과 해석이 다른 것도 참 신기하다.

그는 주옥같은 대사에 감동하고, 또 다른 그는 주인공과 배우에 빠진다. 주인공의 늙은 얼굴이 분장이 아니라 세월이 준 무늬임을 자신의 나이에서 증명해낸다.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배우의 모습이야말로 따뜻한 힘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낯선 도시의 풍경에 마음을 홀딱 빼앗긴다. 지도 속에 동그라미를 치고 언젠가 훌쩍 저 도시를 향해 떠나고 저 돌길을 걸어보리라 계획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각자의 가슴에 제각각의 빛깔로 스며든다. 주인공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리라, 아니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 똑같은 장면을 보고 함께 있지만 다르게 예측한다. 이미 자기의 스펙트럼으로 여과해낸 것이다. 잊고 있었던 내 경험과 감정이 연상되고, 나와 다르게 보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관점이 확장되고, 혼자서는 미처 깨닫지 못한 세상을 보게 된다.

함께 있지만 달라서 좋다. 그의 다름이 참신하게 다가온다. 같으면 같은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강요하지 않는다. 이것이 과연 우리들만의 편 가르기일까. 세상 모든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잃지 않고 그들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고, 그들과의 행복한 관계를 위해 노력하며, 세상 모든 그들 또한 그럴 것이라 믿는다. 무엇보다 현실은 흑백이 아닌 여러 명암의 불확실한 구분임을 인정한다. 한낮의 열기를 조금씩 덜어내며 지나가는 초여름 밤의 바람이 신선하다.

/윤은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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