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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각 마음의 피안(彼岸)

眞易 전병덕(수필가)
등록일 2015-06-17 02:01 게재일 2015-06-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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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처음 종교를 대한 것은 지금부터 반세기 전,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인문학 강의 시간이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빵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따라 홀린 듯 성당으로 들어갔다. 스테인드글라스의 황홀경에 멍하니 서있는데 하얀 옷차림의 수녀가 나타나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맛있는 빵과 예쁜 수녀 누나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의 꼬임에 넘어갔다. 성가대 활동과 토론회 등 여학생들과의 교류로 시작된 교회의 매력은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동운동 금지를 어기고 유인물을 만들다가 담임목사에게 들켜 그만 교회를 떠나게 된다.

`불교 학생회`주관 수련회에서였다. 송광사에서 구산스님과 법정스님을 만났다. 해맑은 미소를 간직한 구산 노스님의 설법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비유하며 법문을 전하는 법정스님의 가르침은 경이와 감동 그 자체였다.

스님의 배려로 암자에서 학승과 함께 기거하게 되었다. 학승은 박학다식했다. 그러나 얼마 후 경외심은 깔보는 마음으로 바뀌고 말았다. 전화로 동생에게 “너 임마, 엄마 속 좀 그만 썩이고 말 좀 잘 들어라.”라든가, 어머니에게 “누구에게 이야기해 놨으니 돈 빌려 쓰세요.”라는 등의 말은 중생인 나와 별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속내를 털어놓자 학승은 단번에 시인을 했다. “내가 수도승이라고 하지만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좀 더 부처님 세계에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중생들과 다른 점은 어떤 결정을 할 때 50대 50의 싸움에서, 겨우 51대 49로 선(善)을 택하는 결정이 좀 더 많다는 것뿐이다. 중생들이 3:7이라면 나는 7:3의 비율은 된다.”

생각이었을까. 말을 맺는 교수의 둥근 얼굴에 고승의 미소가 번진다. 가슴속이 대번에 환해졌다. 왜 이렇게 단순한 사실을 몰랐을까. 1%의 사색이 그야말로 번갯불처럼 선명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그렇다. 한 조각 마음이 바로 차안(此岸)의 그 너머 피안(彼岸)인 것을.

/眞易 전병덕(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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