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로 들어서자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빵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따라 홀린 듯 성당으로 들어갔다. 스테인드글라스의 황홀경에 멍하니 서있는데 하얀 옷차림의 수녀가 나타나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맛있는 빵과 예쁜 수녀 누나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의 꼬임에 넘어갔다. 성가대 활동과 토론회 등 여학생들과의 교류로 시작된 교회의 매력은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동운동 금지를 어기고 유인물을 만들다가 담임목사에게 들켜 그만 교회를 떠나게 된다.
`불교 학생회`주관 수련회에서였다. 송광사에서 구산스님과 법정스님을 만났다. 해맑은 미소를 간직한 구산 노스님의 설법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비유하며 법문을 전하는 법정스님의 가르침은 경이와 감동 그 자체였다.
스님의 배려로 암자에서 학승과 함께 기거하게 되었다. 학승은 박학다식했다. 그러나 얼마 후 경외심은 깔보는 마음으로 바뀌고 말았다. 전화로 동생에게 “너 임마, 엄마 속 좀 그만 썩이고 말 좀 잘 들어라.”라든가, 어머니에게 “누구에게 이야기해 놨으니 돈 빌려 쓰세요.”라는 등의 말은 중생인 나와 별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속내를 털어놓자 학승은 단번에 시인을 했다. “내가 수도승이라고 하지만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좀 더 부처님 세계에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중생들과 다른 점은 어떤 결정을 할 때 50대 50의 싸움에서, 겨우 51대 49로 선(善)을 택하는 결정이 좀 더 많다는 것뿐이다. 중생들이 3:7이라면 나는 7:3의 비율은 된다.”
생각이었을까. 말을 맺는 교수의 둥근 얼굴에 고승의 미소가 번진다. 가슴속이 대번에 환해졌다. 왜 이렇게 단순한 사실을 몰랐을까. 1%의 사색이 그야말로 번갯불처럼 선명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그렇다. 한 조각 마음이 바로 차안(此岸)의 그 너머 피안(彼岸)인 것을.
/眞易 전병덕(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