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가 자라는 사이 아파트 담벼락 밑으로는 잡초들도 제법 자라고 있었다. 익숙한 들풀이긴 하지만 그들이 눈에 띈 것은 분명 익숙한 풍경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로수가 심어진 흙바닥에도 조금, 어쩌다 용기를 낸 몇 포기는 인도의 제법 가장자리까지 진출해 있었다. 되도록 그들을 피해서 발을 내딛던 마음은 역시 고층에서 이십년 넘게 살고 있는 삭막한 배경 탓일까. 그렇게 가끔씩 눈에 혹은 마음에 들어오던 것들이 오늘은 모두 파헤쳐져 연약한 실뿌리를 다 드러내고 누워 있다. 올 것이 오고 만 것,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잘 정돈된 것만을 누리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 지금까지 참아 넘겨준 것만도 용하다고 해야 할 터이다. 그러나 인도 한가운데 성가시고 고집 세게 자라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 파악 못한 채 잔디 정원 가운데서 유난을 떤 것도 아니고, 아파트 울타리 밑으로 바싹 붙어 눈치 보며 자리 좁혀 자라던 것들. 그것도 초록이라고 귀하고 애처롭게 바라보던 눈길과 마음도 그들과 함께 테러를 당하고 말았다.
우리는 산을 깎아서 콘크리트를 높이 세워서는 허공에다 칸을 나누고 도장을 꾹꾹 찍어 다 차지했다. 그것도 모자라 길 끝까지 아스팔트를 깔고 인도에도 빈틈없이 블록을 꼭꼭 덮어놓았다. 도장 하나 갖지 못한 순박한 주인들은 어디까지 쫓겨난 것일까.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청설모며 두더지며 개미들까지 온갖 나무며 들풀과 함께 집을 짓고 살던 터전이었는데 그들은 아무런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고 이주했을 것이다. 풀들은 숨조차 쉴 수 없는 깜깜한 틈사이로 고개 내밀다 오늘은 뿌리째 뽑혀났다. 백 년 쯤 머물다 갈 세상에 너무 대단한 것들을 세워놓은 건 아닌지 문득 돌아본다.
/윤은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