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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반응이 낳은 사회병리

등록일 2015-06-12 02:01 게재일 2015-06-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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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서 온 여름감기 하나가 나라를 온통 뒤집어놓더니 급기야 대통령의 외교일정까지 바꾸어 놓는다. 지병이 있는 고령의 환자들 외에는 가볍게 지나가는 감기인데, 초기에“사망률 40% 운운”기사가 나오면서 `치명적 악성 바이러스`로 둔갑했다. 그 40%는 `고령의 지병 있는 환자의 사망률`이었는데, 이것이 그만 `감염자의 40%`로 오인되었다. 처음 보는 낯선 감기 바이러스여서 그런 오해도 있을 수 있겠지만, `보도의 신중성`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당초 정부는 국민의 불안감을 염려해 신중모드였고, 질병의 전개상황을 조심성 있게 발표한 것은 그리 나무랄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치권이 이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중동감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비화됐다. 서울시장이 “중앙정부를 믿지 못하겠으니 서울시가 따로 대처하겠다”면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고,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증폭시켰다. `낯선 감기에 정부 불신`까지 겹치니, 불안감은 공포감으로 발전됐다. 정치권의 `질병포퓰리즘`이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을 불렀다.

중동감기는 질병 자체보다 그것이 초래한 사회적 병리현상이 더 무섭게 퍼지고 있다. 수도권 학교들이 휴교를 하니, 학생들이 갈 곳이 없어 PC방에 몰린다.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방역을 하는 것보다 나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인터넷에는 “애완동물이 기침을 하는데, 혹시 메르스 아닌가요”란 글이 올라온다. 낙타에서 온 바이러스이니 동물에도 감염될 것이라는 상상을 한 것이다. 점심을 학교 급식으로 해결하는 습관때문에 집에서 점심을 굶는 학생들이 생겨서 `건강상태`가 나빠지기도 한다.

경찰이 음주단속을 미온적으로 하자 음주운전이 부쩍 늘었다. 음주측정기를 통해 메르스가 감염될 수 있다는 이유로 경찰은 “명백한 음주운전자에 대해서만 음주측정을 하라”는 업무지시를 각 지방청에 하달한 것이다. 그 결과 만취상태가 아니면 대리운전을 부르지 않게 되었고, 대리운전업계는 “손님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하소연한다. 경찰이 `메르스 책임`을 면하기 위해 음주운전을 부추긴다는 볼맨소리도 나온다.

사법기관으로부터 소환통보를 받은 형사피의자가 “메르스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가 나올때까지 출석할 수 없다”고 버티기도 하고, 경찰이 `검사 받은 사실 없음`을 알고 재차 소환통보를 하면 “열이 심하게 나고 기침이 나서 도저히 출석할 수 없다”고 둘러대는 사기 피의자도 있다고 한다. 사기꾼들은 중동감기도 사기에 교활하게 이용한다.

마스크가 품귀현상에 빠지자, 가격이 폭등한다. 공장도 가격이 1200원이고 소매가 3500원인데, 이것이 1만원대로 뛰어올랐다. 그래도 없어서 못 판다는 것이다. 근거 없이 부풀린 불안감 공포감이 불러온 사회병리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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