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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그리고 자유인

眞易 전병덕(수필가)
등록일 2015-06-10 02:01 게재일 2015-06-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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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대한 사유가 자못 깊어진다. 나이가 들었다는 표증이리라. 자유를 사전에서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로 풀이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대구시립중앙도서관에서 `목요철학 인문포럼`이 열린다. 30여 년 전통의 인문학 강좌로 특히 인상적인 것은 200여 명의 수강자 중 상당수가 ― 남녀 할 것 없이 육칠십 대의 고령이라는 점이다.

주관자인 노교수는 풍재(風裁)가 남달랐다. 단순히 동안이라는 관점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감동으로 바뀌었다. 십여 년을 초월한 젊음보다는 예의와 겸양이 일상화된, 말 그대로 퇴연(退然)함이 물 흐르듯 하는, 해맑은 표정과 몸에 밴 화사한 겸손의 절제된 자유 의지가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노교수는 주어진 일상의 하루하루가 수도였으며 지행합일을 실천하는 자유인의 삶 자체로 보였다.

노교수와의 만남은 자유에 대한 사유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자유를 `자타의 다름을 인정하고 비교 분석하지 않으며 투쟁에서 놓여나는 일, 비우고 내려놓는 일이다. 비운다는 것은 멸시와 배척, 회한에 머물지 않는 것이며 내려놓는다는 것은 연민과 동정, 안타까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라는 말로 새롭게 정의를 내렸다.

두 사람의 자유인을 만났다. 한 사람은 목요철학 인문포럼의 노교수이고 또 한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그 동창생은 “친구란 하루 열 번 만나도 경제력 있는 사람이 돈을 써야 된다”라는 말을 아주 당연하게 주장하는 색다른 사고의 소유자였다. 그 또한 진정한 자유인임에 틀림없다.

자유는 일정 부분 도(道)와 공통분모를 지향한다. 일상 속에서의 개념이 그러하고 대중 속에서의 개념이 또 그러하다. 거기에 공유(空有)의 개념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구속을 전제하지 않는 자유는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유란 홀로 걸어가며 추구하는 대상이 아니다. 자타가 함께 평형을 이루어, 군중과 함께 중화(中和)의 호흡을 하는 가운데 자유 본연의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다.

/眞易 전병덕(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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