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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별처럼

윤은현(수필가)
등록일 2015-06-01 02:01 게재일 2015-06-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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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어린이 문학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를 선생 1주기에 맞추어 다녀온 기억이 있다. 당신을 추모하는 어떤 일도 말리셨다지만, 고무신 한 켤레 놓여있던 댓돌에 영정 사진 놓고, 소박하게 모인 사람들이 국화꽃 한 송이씩을 바쳤다.

그저 선생을 기억하고 싶어 모인 사람들은 여느 추모식장과는 분위기를 달리했다. 먼 길 마다않고 찾아온 독자들, 혹은 아이들, 아니면 동네 할머니들이 슬리퍼에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마당가에 앉았다간 눈물을 닦으며 코를 길게 소리 내어 풀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지 몰랐다고 했다. “고무신 신고 추리닝 입고 망태기를 들고 다니면서, 이웃들을 잘 도와줘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좋아했지만,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지 장례식 때 몰려온 사람들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했다.

선생은 평생 교회종지기로 사셨지만, 이 땅 위의 우상과 마귀는 마을 앞 서낭당이나 성주단지 혹은 고시레와 까치밥, 차례상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전쟁 혹은 핵무기와 독재와 폭력과 자기밖에 모르는 욕망이며 독선이라고 했다.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가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칠 수 있느냐`는 나무푯말이 그가 치던 종탑 아래에 아직도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고루고루 잘 살려면 많이 벌어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적게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몸소 실천하셨던 분이다. 내 것을 나눠준다는 자선이란 말을 정당화하면서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다고도 했다. 그저 남 탓이나 하고, 가진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는 것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퇴락해가는 탑이 있는 작은 마을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찾는 중심이 되는 것을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남기신 뜻대로 고인의 유골이 뿌려진 빌뱅이 언덕을 돌아내려왔다. 바람이 눈비를 몰고 지나갔을 테지만, 한때는 선생의 몸을 이루었던 하얀 가루가 꽃씨처럼 강아지 똥처럼 힘없고 작은 모습 그대로 발밑에 남아 있었다. 또 다시 민들레꽃을 피우고 별빛이 되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윤은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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