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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등록일 2015-05-29 02:01 게재일 2015-05-2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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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재홍 수필가
손끝에 따끈한 열기가 전해진다. 놀란 잎들이 가쁜 숨을 토해낸다. 코끝에 스미는 아릿한 향. 취할 것 같다. 수많은 연꽃이 어른거린다.

어젯밤 연꽃단지에 갔다. 푸른 잎 사이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연분홍 꽃이 고혹적이었다. 열이레 둥근 달도 불콰한 얼굴로 연밭에 빠져있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나도 모르게 슬몃슬몃 연잎을 따고 있었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는 남편의 걱정도 안중에 없었다. 깨끗한 걸 따려고 애쓰다 발이 미끄러졌다. 하마터면 연밭에 고꾸라질 뻔했다. 무엇에 쓰려고 이러나.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나도 연향에 빠져버렸나. 아니 어쩌면 그 친구 흉내를 내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태 전이었다.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친구가 자기 집에서 모임을 주선했다. 산기슭 아늑한 마을에는 봄이 한창이었다. 차려놓은 밥상에도 봄나물 천지였다. 우리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정신없이 배를 채웠다.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자 친구가 차를 내어왔다. 작년 가을에 처음 해 본 국화차라 했다. 첫 서리가 내리고 열흘 안에 딴 꽃이라야 한단다. 온 산을 헤집고 다니느라 여기저기 긁히고 멍투성이가 되었다고 했다. 조금밖에 만들지 못했으니 맛이나 보라 했다.

한마디로 뿅 가버렸다. 그윽한 향과 쌉싸래한 맛도 그만이지만, 다기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꽃이라니. 뜨거운 물속에서 어쩌면 그리도 태연하게 앉아 있는지.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일이었다. 아홉 번 삶고 말렸음에도 또다시 피어나는 저 힘은. 작고 여린 몸으로 비바람에 맞서다 얻은 자생력이라 해도 얼마나 대단한가. 앙증맞은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해 늦가을,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하철역에서 잠깐 보자는 말만 하고 끊었다. 십수 년 동안 모임을 함께 하면서도 특별히 도타운 사이는 아니었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또 그뿐인 친구가 무슨 일일까. 궁금증을 안고 지하철로 향했다. 그녀는 예쁘게 포장한 조그만 병을 내놓았다. 얼마 전에 만든 국화차라 했다. 자기가 만든 차에 환호하던 내게 꼭 주고 싶었노라 했다. 나를 생각하며 만드는 내내 즐거웠다고 덧붙였다.

가슴이 먹먹했다.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무엇이든 가지고 나올걸. 미안하고 고마워 밥이라도 한 끼 하자고 했다. 친구는 바쁜 일이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구증구포로 가을을 다 보내버렸다는 그녀의 입가에 행복한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누군가를 그리며 하는 일은 힘들어도 고생이라 생각되지 않는 법이다. 친구는 신나게 국화차를 만들었을 것이리라. 총총히 사라지는 그녀 등 뒤로 나눔의 기쁨이 따라가고 있었다.

연잎을 덖는다. 오그라든 잎에서 마지막 숨결인 듯 뽀얀 김이 올라온다. 불을 끄고 깔아놓은 천에다 쏟아 붓는다. 차를 비비는 데는 멍석이 제격이라지만, 집에 있는 대 발 위에 광목을 깔았다. 면장갑을 끼고 문지르며 비빈다. 퍼런 물이 스며든 흰 천을 보자 내가 멍이라도 든 듯 뜨끔해진다. 자연 속에 그냥 두지 못한 자책인지도 모르겠다. 얼른 솥에다 넣고 다시 불을 켠다. 네 번 다섯 번, 횟수를 거듭할수록 푸른 잎맥이 퇴색되고 물기가 잦아든다. 다 되었다는 신호인가. 바짝 마른 잎에서 숭늉 냄새가 올라온다. 본래의 향은 어디다 두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지. 향도 단련되면 이렇듯 숙성된 맛을 내는 모양이다.

아홉 번을 덖고 식히다 보니 하루해를 다 써버렸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은 아니다. 내가 먹겠다고 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연잎 차가 어떤 이를 반하게 해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침부터 매달리느라 다른 일이 산더미처럼 밀렸다. 연기와 땀으로 몸도 칙칙하다. 하지만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마무리에 열중이다. 누구를 주겠다는 설렘 때문인가. 아니면 연잎이 선물한 성취의 기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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